배부른 소리
생활의 기준이 월급날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다. 언젠가를 위해 무작정 뚝 떼어 놓는 비상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월급날이 사라졌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정작 일을 하지 않을 때 비상금을 조금씩 헐어 쓸 때마다 불안하고 조급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느 순간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 테두리만 살살 긁어대는 아이처럼 강제 0원 챌린지를 하게 된다. 반면, 다음 프로젝트를 구해놓았을 경우에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즐겁고, 하루종일 상쾌했다. 곧 월급날이 도래할 테니 일부분을 허물어 맘껏 즐겨도 좋다는 만용을 부리거나 남들 일하는 낮시간에 한적한 맛집을 가는 등의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생각보다 낮에 노는 사람들이 많다. 죄다 프리랜서인건지, 월차를 낸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치는 점점 올라가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계속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취해 살았는데, 가영*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현영*이 나이가 들 수록 체력도 바닥을 칠 거라는 사실이었다.
(라떼는 말야) 매일 야근을 하고서도 새벽까지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미래의 체력을 대출받아 썼기 때문이다. 그 연체이자가 지금에서야 청구되어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벌써 피곤함을 느낀다. 아무리 충전을 해도 배터리 용량이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면 운동을 해야지.라는 말이 나오지만 배터리가 절반도 안 남았다니깐? 운동을 해야 체력이 올라가지.라는 말은 하지 말라. 배터리 용량은 그대로인데 몸뚱이를 바꿔 끼울 수도 없고, 본체도 OS도 다 낡았다구. 업데이트가 안돼. 다음 생에 새로운 기기로 태어나지 않는 한 남은 생은 이렇게 살아야 해. 그리고, 평생 일했는데 이제 쉬어도 되잖아. 왜 모두들 '그래도 벌 수 있을 때 벌어놔라.' '끝까지 버텨라.' 이런 말만 하는 건가. 내가 무슨 물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도서관 근처에 살면서 소박한 여생을 보내겠다는데.
여름휴가를 10월 말로 연기했다. 날씨가 계속 덥기도 하고, 막내직원이 그만두고 새로운 인력이 들어오면 교육도 시켜야 하니까. 오늘은 취소 가능한 캡슐호텔을 예약했다. 어차피 하루종일 돌아다닐 거라서 좋은 호텔은 의미가 없다. 2일에 약 10만 원. 항공은 20만원 정도. 2박 3일 일정 중 하루는 바이크를 예약해서 이곳저곳 다닐 예정이다. 관광지는 관심이 없고, 쇼핑할 것도 없다. 그럼 뭐 하러 가. 싶겠지만 가장 큰 목적은 2종 소형 바이크 면허 딴 김에 외국에서 몰아보려고 가는 거다. 동남아는 너무 멀고, 간신히 시원해졌는데 더운 나라 가고 싶지는 않아 선택한 일본이다. 일본은 자동차보다 바이크 렌탈비가 더 비싸다. 8시간+보험까지 해서 약 8만 원에 예약 완료. 옵션으로 헬맷을 추가해야 하는데 풀페이스밖에 없어서 쿠팡에서 직구로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