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런거지 그런거야
프로젝트를 구할 때 운영 업무는 레퍼런스로 인정해주지 않는 편이다.
단순/반복 업무이기도 하고, 실력이 없어도 대충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장점이 있기는 하다. 연간 계약이 대부분이다보니 쉬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칼퇴가 가능하다는 점.
(요즘은 구축도 야근/철야는 사라진지 오래라고는 하더라.)
구축 프로젝트보다는 단가가 낮기는 하지만 안정적이고 느슨한 근무환경 때문에 나처럼 은퇴를 앞둔 기획자들은 휴양지같은 기분으로 일할 수 있다. 물론, 경력을 쌓아야 하는 젊음에게는 기피대상이기는 하지.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기회도 적고.
어쨌든 오늘도 출근해서 30분만에 업무를 처리하고 느긋한 나머지 시간을 부유하고 있다.
그래도 평생 해왔던 짬밥이 있는지라 빠르게 처리한다.
적장을 베던 장검으로 무를 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젠 매일 칼 갈기도 귀찮고 대충 썰어서 먹으면 그만이지.라는 뒤이은 생각이 금새 앞선 것을 덮어버린다.
당장 오늘 그만두고, 내일부터 백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기에 회사에 대한 애정은 없다. 인간관계도 같이 한 사무실에서 일하니까 엮인거지 나 하나 사라져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 아쉬워할 사람 없다는거 예전부터 알고 있다.
올해처럼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근무시간 9시간 중 온전히 일하는 시간은 1-2시간 내외. 나머지 시간은 개인적인 일로 채워진다. 책도 읽고, 여행계획도 짜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물론 바쁠 때도 있지만, 기계적이고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 그닥 스트레스는 없다. 공장처럼 찍어내고 완성하고. 이렇게 돈 벌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운 인생. 젊었을 때 그렇게 고생하더니 말년운이 트인건가. 이토록 몸이 편한데 왜 입가는 터지는지 모르겠다.
초등 아들 2명을 키우는 G는 나를 보며 희망을 갖는다고 한다.
/책임님은 60살까지도 일하실 거 같아요. 저도 할 수 있겠죠?
//그때까지 일하는건 좀 슬프지 않나?
/왜요. 오래 일하면 좋죠.
하긴, 놀면 뭐하나. 뚜렷하게 할 일도 없는데.
어제는 진짜 놀면 뭐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미용은 항상 배워보고 싶었던 거고,
공인중개사는 어떤가 싶어 알아보니 아서라. 다들 뜯어 말리는 글 뿐이다.
그래.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야지.
오늘은 고객사가 전사적으로 쉬는 날이어서 안그래도 일이 드문데 하루종일 쉬고 있다.
저녁에는 도서관에 가서 예약도서와 다른 책들을 빌릴 예정이다.
요즘은 이슬아 작가와 박상영 작가 글에 꽂혀서 찾아 읽고 있다.
엊그제 읽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은 실망스러웠다.
왜 이리 어둡고 우울한 주제로 쓰는 것인가. 일반적인 플롯이 아닌 실험적인 흐름이어서 처음에는 약간 헷갈렸다.
화자가 바뀐다던가 현재와 과거를 끊임없이 넘나들다보니 나중에는 좀 지쳤다.
그런 면에서 박상영 작가는 슬픈 일도 유머로 승화를 시켜 마음이 편안해진다.
미대오빠가 쿠팡 회원이라 쿠팡플레이를 보고 있다.
오래된 작품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맞는 작품들이 많다.
최근에서야 셜록 영드 시리즈를 다 봤다.
에피소드마다 1시간 30분씩이나 되서 매번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시즌4에서 셜록의 미친 여동생편은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진짜 억지로 봤다.
프랜즈 시리즈도 있길래 1화를 봤는데, 역시 내 취향이 아니어서 쉽게 포기.
대신, 프린지를 발견했다. 분명 재밌게 봤었던 기억이 있는데, 스토리는 전혀 생각이 안난다. 즐겁게 정주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