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에 다이슨 선풍기를 내놨다
성능은 정상이지만, 오래되기도 했고(2012년) 무엇보다 소음이 너무 커서 나 스스로 비행기가 되어 하늘을 달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항공 엔진을 만들었던 회사라서 그런가. 동일모델이 작년에 3만 원에 판매된 것을 보고 절반 가격으로 등록했다. 미대오빠는 만원에 줄 수도 있다며 관대한 척했다.
제품 사진을 찍고, 혹시 모르니 작동할 때 소음을 들을 수 있도록 단계별로 동영상도 찍었다. (그러나, 당근에는 동영상 업로드가 되지 않는다.) 나의 글쓰기는 당근에 물건을 등록할 때마다 빛을 발한다. 간결하고 진지하게, 요점만 간단히. 그러면서도 약간의 유머는 남긴다. 일할 때도 이렇게 거듭 검수를 하지 않는데 말이지.
글을 올리자마자 채팅방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리셀러임이 분명한 몇 백개의 거래내역을 가진 사람들은 제외했다. 이후로도 웃돈을 주겠다는 사람, 아내가 에어컨을 못견딘다는 사람, 아이가 선풍기 날개에 손을 다쳤다는 사람 등등 별의별 인생극장이 펼쳐졌다. 그 중 황당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구입하셨는데 콘센트는 한국이랑 호환이 되나요?
/온풍기 기능도 되나요?
강아지를 하루종일 집에 놔둬야 해서 필요하다는 이에 잠시 흔들렸으나, 최종적으로 거래온도가 99도인 노인을 선택했다.
그가 보낸 문구도 웃겼고. 거래내역을 보면 절대 가난한 사람이 아니긴 했다. 그냥 더위를 많이 타는 노인이었다.
/개인 노인입니다. 제게 팔아주세요. 날이 많이 덥네요.
거래예약을 잡은 뒤, 잠시 후 다른 사용자에게서 컴플레인이 도착했다.
자기가 제일 먼저 채팅을 했는데, 왜 내내 답이 없다가 다른 사람한테 넘겼냐고.
누굴 주든 내 맘이지.라고 댓글 달고 싶었지만 최대한 참고 썼다. 그리고 차단했다.
/가장 필요로 하는 분께 넘긴 겁니다.
놀이터에서 만난 그는 머리가 하얗다 뿐이지 내 또래처럼 보였다.
보통은 막 벤츠, BMW타고 오는데 슬리퍼에 반바지, 소박한 쇼핑백 하나 들고 오셨다.
이제 더이상 팔 거 없어.
미대오빠는 속시원하다고 했다.
만오천원은 당근 통장에 저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