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탄생일입니다만
도련님의 탄생일입니다. 몇 번째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시원한 계절에 태어나다니, 그래서 성격이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가 역시 효자답습니다. 저는 5월생입니다. 뭐. 나름 좋은 계절이지요. 그래서 성격이 좋았으면 좋으련만. 더위에 약하고 추위에 강한 체질은 태어난 계절과는 상관없습니다. 1년 내내 창문을 열어놓고 살며, 아무리 추워도 보일러를 틀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데다 갱년기 증세까지 더해져서 낼모레 11월인 지금도 사무실에서 선풍기를 틀어놓습니다. 반면, 도련님은 얼마나 꽁꽁 싸매어 자란 것인지 창문이고 뭐고 문 여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애 초기에 너무 답답해서 창문을 열었다가 악. 소리 나게 싸운 적도 있습니다. (다시 생각하니 또 열받네요.) 해서, 합의한 것이 따로 자는 겁니다. 도련님은 깊은 동굴 같은 작은 방에서 창문을 이중으로 닫고(꼭 잠급니다.) 방문도 닫고 잡니다. 그 방에 들어가면 온도가 3도 정도는 더 높습니다. 올해 더웠잖아요. 그래도 손바닥만 한 선풍기만 틀고 자더군요. 반숙도 아니고. 저는 안방에서 방문도 활짝, 창문은 살짝 열고 잡니다.
선물로 뭐를 사줄지 고민을 했는데, 사실 도련님이 물욕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맨날 사다 나르는 게 세제, 수세미, 청소용품 등 생활용품밖에 없습니다. 옷이나 신발도 구멍이 날 때까지 입는 편이고, 테무에서 똑같은 반팔 티셔츠를 몇 개 사서 주야장천 그것만 입어요. 그나마 목돈이 나가는 게 애플에서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갈아타는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10년 넘게 탄 자동차를 바꾼다며 몇 년째 고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운전하는 걸 무서워해서 내부순환도로나 88도로도 안타는 사람인지라 교외 드라이브 같은 거는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제가 바이크 타고 갔다 오면 돼요.
제 생일 때 받은 선물은 고프로입니다. 비싼 제품이죠. 그 당시에는 갖고 싶었고,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에 준하는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물어봐도 없다 하고, 그럼 안 주겠다고 하면 처진 눈이 순간적으로 확 치켜 올라갑니다. 어쩌라는 것인지. 저녁에 외식이라도 하려 했지만 외근 때문에 안된다고 하네요. 어쩌라는 것인지. 그래, 이 딴 게 뭐가 중요해. 마음이 제일 중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난감합니다.
--> 결국, 빕스(VIPS) 갔습니다. 평소에는 비싸서 안(못)갔었는데 생일이니까 큰맘 먹고, 1년에 한 번이니까. 맥주와 와인이 무제한이고, 연어가 특히 신선하고 맛있었습니다. 게요리도 있는데, 오래되고 너무 말라서 살집이 별로였습니다. 애슐리보다 가짓수는 적었지만 왠지 재료가 좀 더 신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괜찮네요. 통신사 5% 할인 이외 좀 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이 와중에 교보문고에서 북커버 세일하길래 구입했습니다. 네. 저를 위한 선물입니다. 도련님은 역사나 건축 관련된 책 이외에는 (거의) 읽지 않습니다. 수제 북커버는 의외로 고가이기도 하고, 직접 만드는 방법도 있기만, 저는 시간과 수고를 포인트로 사기로 했습니다.
어제는 소문난 돈까스를 먹으러 갔습니다. 튀김옷이 엄청 바삭해서 한 입 베어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수프도 우유를 넣은 것이 분명한 맛이었어요. 전체적으로 간이 심심해서 좋았습니다. 도련님은 좁고 어둡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며 시큰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접시에 있는 것까지 다 먹었어요. 예약이나 포장도 안 되는 가게라 다음에는 저 혼자 가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