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잠깐 살아보기 - 18일째
금방이라도 쏟아져내릴 듯 울먹거리는 흐린 날씨다. 나갈까말까 망설이다 바이크를 몰고 나갔다. 이젠 바이크의 엔진소리만 들어도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있다. 코너를 돌때나 가속을 할 때 내 몸과 일치됨을 느낀다. 재밌다. 너무 재밌다. 비맞으면서 달리는 것도, 주위를 휙휙 지나가는 풍경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아도 그저 익숙해지고 정겹다.
쯜룩을 거쳐 나무세공으로 유명한 동네를 지나 시장에 도착했다. 문을 닫은 상점 앞에 불법주차하고 천천히 시장통을 누빈다. 2층으로 올라가 좁은 통로를 지나가는데, 싸롱을 사라고 한다. 도대체 싸롱을 입고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대신 천가방 몇 개를 집어들자 대번에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
에이..왜 그래요. 절반을 깍으니 입을 쭉 내밀며 안된다고 한다. 그럼 2개 사면 그 가격에 줘요.라고 하니, 어렵게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봉지에 담는다. 다른 물건을 들춰보자 이를 놓치지 않고, 3개 사라고 조른다. 엽전 3개가 달려있는 가방이었는데, 엽전장식이 싫다고 하자, 잘라내는 시늉을 하며. 컷.컷. 오케이? 한다.
물론 잘라내도 되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돈을 낼 때 슬쩍 좀 더 깍아달라고 하자 안된다고 도리질한다. 에이..그냥 줘요. 하며 돈을 내미니 한숨을 쉬며 알았다고 한다.
돈을 내려는데, 한국돈으로 1600원 정도. 음료수 포함 가격이다. 외국인과 현지인의 물가차를 느낄 때마다 억울함보다는 좀 더 다양하게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환전을 하려고 동네 상점에 들렀다. 보통 8900루피 정도인데 8000루피를 찍는다. 뻔뻔스럽게도 수수료를 제한 금액이라고 한다. 이런 사기꾼을 봤나. 10명 중의 하나는 이렇게 외국인에게 사기를 치는데 적극적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제대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발리에서의 마지막 밤. 누구나 갖고 있을만한 로망. 비맞으며 수영하기.를 해보기로 했다. 눈을 똑바로 뜨지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비로 수영장 수위마저 높아진 것 같다. 이러다 벼락 맞아서 감전사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옷이 젖을 걱정하지 않고 한참동안 수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