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발견

발리에서 잠깐 살아보기 - 8일째

iamlitmus 2010. 11. 13. 01:54

밤새 비가 많이 왔었는지 테라스 바닥과 건조대에 널어놨던 타올도 몽땅 젖어버렸다.

그 와중에도 언제 그랬냐는듯 이내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건조대 위치를 바꿔놓고 거실에 앉아 바깥을 바라본다. 11에서 3-4까지는 기온도 높고따가워서 외출하기가 겁난다. 썬크림을 열심히 발랐는데도, 양쪽 팔에 주근깨가 선명하게 올라오고 있다.  

 

인터넷 연결을 해주기로 한 다람쥐 처녀로부터 연락이 없다. 점심무렵에는 연결될 줄 알았는데,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일단, 자전거를 타고 동네한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걸어서 30여분 걸리던 슈퍼까지 단 10분만에 주파했다왕복 1차선이라고는 해도 자동차와 버스, 오토바이가 함께 다니는 길이다보니 자전거를 타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역시 오토바이가 절실하다.
 

방향을 돌리려는 찰라 허니무너임이 분명해보이는 커플이 가이드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인이세요? 라고 물으니, 어머어머..엄청 반가워한다. 나도 이 동네에 온지 3일 밖에 안됐지만, 이미 머리속에 지도입력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길을 가르쳐주고 주택가로 들어서는 뒷길로 방향을 틀었다.


가끔씩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적한 뒷길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에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달린다. 대부분 35일 정도의 스케쥴로 발리를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골목을 탐방하기가 쉽지 않다. 바이크를 타고 있었다면 지나쳐 버렸을 예쁜 뒷골목을 달리면서, 꽃과 나무로 뒤덮인 담장과 가끔씩 지나가는 현지인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골목길 끄트머리에서 쌩쌩 달리는 큰 도로로 나갔다가 다시 다른 골목길로 들어선다. 좀 더 좁은 길목이었는데, 아무래도 개인 주택단지로 들어갔던 모양이다. 뒷편에서 너 어디 가냐고 묻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남자 2명이 웃으며 서있다.
길을 잃었다고 하니, 저쪽으로 나가라며 철문을 열어준다.
너 어디서 왔니? 나 한국인이야발리인들은 한 문장의 인사를 나눠도 오랫동안 사귄 친구처럼 활짝 웃어준다깨끗하고 좋은 레스토랑의 직원들의 깍듯한 친절과는 다르다. 그런데일본인사에 익숙한 듯 사요나라를 외친다. 순간, 다시 뒷걸음질쳐 그들에게 다가섰다.
한국어로 잘가는 안녕.이라고 해. 굿바이. 이런 뜻이야. 말하자마자 바로 안녕.하고 답례를 해준다.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니하오마를 수없이 들었지만, 주문처럼 나오는 말일 뿐 진심이 담긴 인사말은 아니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만은 분명하게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다시 큰길로 나섰다. 자전거는 한시간 이상 타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한낮에는 30도는 우습기 때문에 금새 땀줄기가 흘러 내린다.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다른 골목을 돌아보기로 하자.

 

에코가 출근하자마자 아는 렌탈샵으로 바이크를 빌리러 갔다. 막상 가보니, 어제 자전거를 빌렸던 슈퍼다. 세탁소도 하고, 슈퍼마켓도 하고, 렌탈샵까지 함께 하는 것을 보면 동네유지임이 분명하다. 최신형 바이크를 1일 6천원정도 가격에 빌리기로 하고, 국제면허증 카피를 해오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10대가 아닐까 생각했던 에코가 이미 26살이며, 6년전 결혼을 해서 한 살짜리 아이까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휴대폰의 아이사진을 보여주며 연신 벙글대는 그가 오히려 아이같다자동차 같은 경우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보험가입이 되지만, 바이크의 경우에는 저렴하기 때문에 보험가입이 어렵다고 한다. 사고가 나도 보상되지 않으니 조심해서 몰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그래도 못미더웠는지 너 바이크 몰아본 적 있느냐고 묻길래 한국에서도 바이크 갖고 있고, 진짜 잘 탄다고 대답했는데도, 여전히 불안해한다. 천천히 몰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사실, 한국에서 몰아본 것은 50cc이고, 내가 빌린 것은 110cc라서 속도에 취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달리게 되는 부분은 있다.
큰 도로 사거리에는 경찰들이 외국인들을 집중적으로 단속하는데, 헬맷미착용은 100%, 정지선을 밟거나 벗어나기만 해도 잡힌다. 정해진 벌금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보통 걸리면 4-5만원정도는 각오해야 하므로 큰 길에서는 특히 운전에 주의해서 다녔다.

발리의 오토바이 브랜드는 야마하나 혼다제품이 많고, 110cc가 대부분이다. 가격대는 130만원대이니,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편이다. TV를 보면 경품으로 바이크가 걸린 경우가 많고, 바이크 하나에 엄마,아빠, 아이 둘이 타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중학교 정도만 되도, 바이크를 몰 수 있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 가면 교복입고 타는 아이들이 많다.  큰 도로를 달리다보면 유난히 길위에 슬리퍼가 많이 떨어져 있다. 오토바이를 타다보면 헐레벌떡 신발이 벗겨지는데, 나 또한 슬리퍼를 신고 다니면서 벗겨지지 않도록 발가락에 힘주고 탔다. 현지인들은 보통 긴팔옷이나 점퍼, 심지어는 파카까지도 입고 타는데, 살이 타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햇빛이 너무 강해서 신호대기하는 순간에도 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제 바이크가 생겼으니, 기동력 오케이. 내일부터 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