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불사신이 될거야
엄마는 안방 침대에 누워 TV 보는 것을 좋아한다. 맨날 소리 지르고 싸우는 드라마도 챙겨 보지만 홈쇼핑 채널을 켜놓고 잠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근하는데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리고는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소가죽 신발을 주문해 달라고 했다. 브라운 컬러로. 그게 없으면 블랙으로. 250mm. 3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얼마 전 엄마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알려줬지만 금세 까먹는다고 울상을 짓던 엄마였다.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또 배우면 된다고 위로했지만 엄마는 속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갖고 싶은 신발이 생기니 완벽하게 배운 것 같다.
하나에 꽂히면 될 때까지 하는 엄마에 비해 아버지는 쉽게 포기한다. 누구에게 물어보느니 불편한 것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하긴, 사진 보내는 법 모른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반면, 그에게 있어 거실의 TV 리모컨을 다루는 것만큼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루 10시간 넘게 봐야 하니까. 2개의 리모컨으로 셋탑박스와 TV를 켜고 볼륨과 채널은 어떤 거더라. 집에 갈 때마다 아무거나 눌러대는 나에 반해 아버지의 손놀림은 능수능란하다. 또 하나 아버지 취미 중 하나는 닥터쇼핑인데,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모토아래 자신을 모든 약의 마루타로 삼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노화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증세에 의심을 갖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 받는 한편, 하루 세끼 고봉밥을 챙겨 먹는 것도, 찌는 듯한 무더위에 놀이터 10바퀴를 돌고 오는 것도 그가 감내해야 할 무병장수의 방법 중 하나였다.
오줌발이 시원찮다고 전립선약을 먹던 아빠는 이미 복용 중인 수많은 약들과의 충돌로 인해 거품을 물고 쓰러졌었다. 나중에 엄마는 아빠를 들어 올리는데 너무 더러워서 구역질이 났다고 했다. 우웩! 하면서도 엄마는 아빠를 서울대병원에 날라 눕혔다. 응급실에서 정신을 차린 아빠는 그만의 에버랜드에 도착한 것을 알았다. 이왕 온 김에 모든 검사를 다 받아보고 싶어 하는 그에게 엄마는 그냥 뒈지게 놔뒀어야 했다며 화를 냈다. 오빠는 말려도 또 실려올 사람이니 원하는 대로 해주자고 했다. 당연히 모든 결과는 정상이었고, 아빠는 왠지 서운한 마음을 품고 퇴원했다.
엄마는 아빠가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쉽게 숨이 끊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또 약을 삼켰다. 배가 부르면 소화제를, 변비다 싶으면 설사약을, 설사를 하면 지사제를 먹었다. 가끔 약장 캐비닛을 열어보면 몇 가지 약이 또 늘어 있었다. 가족에게도 인색한 아버지가 유일하게 아끼지 않는 것이 자신의 병원비와 약값이었다. 어쩔 때는 너무 얄미워서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 천 원이라도 훔치면 그만큼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이 흐려졌다.
K의 친할머니는 96세이다. 치매도 없고 정정한 고령 할머니를 모시는 것은 68세/64세 미혼인 고모들이다. 얼마 전, 고모들은 더 이상 모친을 모실 수 없으니 아들에게 데려가라고 했다. 며느리는 초등손자 2명을 맡아 주느라 시어머니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와 딸 사이는 짠하면서도 빡치는 관계라는 것을 알기에 고모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달까. 손주들은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당연히 시어머니를 우선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할머니는 차라리 요양원에 가겠다고 엄포를 놨는데, 어찌어찌하다 진짜로 김포에 위치한 요양원에 가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요양원에 들어가는 날, 아들은 어머니를 업고 가겠다 했지만, 그녀는 우리 아들 허리 다칠까 싶어 당당히 119를 불러 요양원에 입성하셨다. 그리고, 아무도 면회하러 오지 말라고 선언했다.
엄마는 103동에도 90살이 넘은 할머니가 있는데,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럽고 자식들한테도 미안하다고 했다. 죽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빠는 또 약을 삼키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