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티제의 생활
계획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혹시 모를 구멍이 있을지 모르니 그것을 위한 대비 계획을 세우고,
모든 것이 빠그라질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은 잠깐 떠올렸다가 그렇게 되면 다 죽는거야.라고 생각하는 나.
어떻게보면 새디스트 성향과 유사한데, 스스로를 극한 상황까지 몰아붙이고
이것을 이뤄냈을 때 안심 및 도취되는 변태성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에너지가 3시간 짜리라 대부분 계획을 세우다가 나가 떨어져 버린다는 것.
저녁 메뉴는 뭘 먹어야지. 냉장고 재고를 떠올리고, 레시피를 찾은 다음, 부족한 재료는 퇴근 길에 마트에 들러서 사야지.
집에 가서 손질하고 불피우고 먹고 치우고 나면 아. 역시 사람은 하루에 한끼만 먹어야해. 이렇게는 못산다.싶어 최소 며칠 동안은 입맛이 없어진다.
주말에는 어디에 가야지. 도서관에 갔다가 카페 갔다가 빵을 사러 가고. 새로 생긴 잡화점도 들러봐야겠다. 베키타고 드라이브도 가고 싶다.하다 아니야. 지금 나가면 불판에 구워질거야. 가을부터 움직이자. 지금은 땅속에서 살아야 할 시기야.
염색을 해야 하는데 그 번거로움을 감당하려면 약 1주일 정도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하는거야. 머리는 매일 자라나니까. 어떻게든 미루자. 평일은 버겁다. 토요일에 하자.
일단,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마음이 서면 실행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40대이니까 몸무게 앞자리를 4로 만드는 목표를 세우고 유지어터가 되겠다는 결심 비슷한 걸 했다.
-기대해도 좋아 中-
그럼 난 5로 만들어야 하는건가.
031로 시작되는 번호여서 안받을까 했지만 역시나 보험 권유 전화였다.
관심없다고 말할 틈도 없이 주어진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상담원의 목소리는 어리디 어렸다.
그래. 네가 이렇게 일하려고 애쓰는게 어디니.
홍대에서 밤새 놀다 출근버스에 올라타 담배냄새 쩔은 채로 수다떨던 여자애들이 떠올랐다.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마음을 조금은 알고 있기에 말도 없이 끊어 버릴 수는 없었다.
저...마음 상하실 까봐 듣기는 했는데요, 제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너무 좋은 기회이고, 어렵게 연결이 되었는데..
저..가족이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어서(사실이다.) 이미 가입이 되어 있습니다.
아..관리 받으시는구나. 알겠습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