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발견

<행인(行人)> 나쓰메 소세끼

iamlitmus 2007. 3. 26. 16:49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처럼 유머스러우면서도 재치있는 내용이 아닌, 인간의 모든 심리적 변화를 세심하게 그려낸 조심스러운 작품이다. 즉흥적이고 무심한 주인공과는 달리, 고독하고 우울한 인텔리인 형은 주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 사실을 자신도 알고 있고, 그래서 더더욱 고립감을 느끼는 형은 끝내 동생과 아내의 사이를 의심하게 된다. 형수와의 여행을 통해 그녀의 의중을 떠보라는 형의 제안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형수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은 그를 잠시나마 혼란스럽게 만든다. 형수는 형수대로, 형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이렇게 살아야 할 운명에 얽혀있는 것에 대해 자조섞인 쓴웃음을 짓는다. 불행한 부부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마음은 몹시도 불편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형부부가 있는 집에서 나오는 것뿐이었다.

소원해진 관계속에서도 간간히 들려오는 형의 근황은 그리 밝은 것이 아니었고, 그는 지인을 통해 형과의 여행을 부탁하게 된다. 여행지에서 날아온 지인의 편지에는 형이 스스로를 가둬 놓으며 얼마나 고독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과 함께,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까닭에 가족까지도 불신하게 된 그를 탓해서는 안된다는 동정심마저 나타나 있다. 죽거나, 미치광이가 되거나, 종교인이 되는 길밖에는 없다고 부르짖는 형의 정신적 결벽성은 이미 미치광이가 되는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래 전체를 뭉뚱거려 잘게 부순 현실을 바라보는 형의 고독감은 그 누구도 걷어낼 수 없는 짙은 안개처럼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