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효자열전

iamlitmus 2007. 3. 26. 15:03

/우리 아들은 한달에 100만원씩 꼬박꼬박 용돈을 줘.
날벌레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놀이터 벤치에 모인 아줌마들은 부지런히 손부채질만 할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얼마전엔 출장 갔다 오면서, 녹용을 사왔더라구. 아주 지 에미라면 끔찍하다니깐. 아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먼저 들어가요.
한바탕 더운 바람을 흐트러뜨린뒤 분주한 걸음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지켜보던 101동 아줌마는 그제서야 참았던 말을 내뱉었다.
/지 아들 등골 빼먹는줄도 모르고 자랑질은.
/그러게 말예요. 자기 얼굴에 침뱉기지. 요즘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인물들이 모인 가운데 둘도 없는 효자를 둔 아줌마는 한창 핏대를 올려대고 있었다.
/아니, 내가 없는 말 했어? 내 새끼 잘 키워서 덕 좀 보고 산다는데, 아줌마가 뭔 상관이야.
/자식 귀한 줄 알면, 그러지 말라는 거죠. 말을 안해서 그렇지 좀 부담되겠냐구요.
/돈 잘버는 자식 둔게 죄야? 에미한테 잘하는 자식 둔게 죄냐구.
/누가 뭐래요.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왜 이렇게 화를 내요.
/지금 상진엄마 말하는게 그렇잖아. 내가 자식 피 빨아 먹고 있다는거 아냐. 안그래?
이즈음에 이르자 상진엄마는 어처구니 없다는듯 입만 벙긋거렸지만, 분한 맘에 내뱉은 말이 급기야 큰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흥. 그렇게 잘난 아들 뒀으면서 왜 맨날 가짜만 걸치고 다닌대.
/뭐라구? 뭐가 가짜라는거야?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지금 아줌마가 걸치고 있는 것들 다 가짜잖아. 내 눈이 봉사인줄 알아요?
/이..이 여편네가..
그 다음에 볼만한 광경이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녀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로 금쪽 같은 아들에게 전화를 넣었고, 자신이 가짜만 하고 다닌다고 업신당했다며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분기탱천한 아들은 순금팔찌를 찬 두툼한 팔뚝을 휘두르며, 당장 금은방에 가자며 펄쩍펄쩍 뛰었다.

며칠뒤, 저만치서 걸어오는 그녀의 온몸에는 휘황찬 금빛이 넘실거렸고, 의기양양한 얼굴에서는 만족스런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이래도 내가 가짜만 하구 다녀? 이게 가짜야? 어디, 그 잘난 눈으로 한번 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