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oday's..

쇼가 시작됐다_1

by iamlitmus 2023. 7. 26.

근무 3주차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의 파트장은 1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한 터라 그 누구보다도 업무를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함부로 하고 못되게 굴어 에잇. 더러워서..나가겠어. 하게 만든다는 점. 그런 태도에 주의를 주면 당장 퇴사한다 울부짖고 난리를 치는데 어르고 달랠 수 밖에 없는 관리자 입장에서는 분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인물이라는거지(일명, 계륵).

 

이런 상황을 한껏 이용하며 더욱더 고개가 빳빳해지는 돼지(라 부르겠다)를 약 3주 정도 관찰해본 결과 그녀가 쓰는 방법이 말로만 듣던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변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적질을 하면서 주눅들게 만들고 네가 아는 것은 다 틀린 것이다.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니 자신이 다 해야 할 것 같아서 힘들다. 이런 식으로 레퍼토리가 진행된다. 

 

처음에는 그러던지 말던지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은근 신경 쓰이게 되고 점점 스트레스 덩어리가 쌓여갔다. 아. 이렇게 해서 애들을 내보냈구나. 나름 멘탈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나도 영향을 받는데 사회초년병들이나 마음이 약한 이들은 당연히 타격이 클 것이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회사를 그만두면 되지 왜 죽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돼지 행태를 보니 이해가 될 정도로 못된 년이다. 

 

이꼴저꼴 안보고 그만두면 끝이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돼지가 없어도 이 팀이 굴러갈 수 있게 마스터해서 저 년을 내보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2월 계약갱신을 할 때 멋지게 날려버리는거야. 라는 생각만 해도 속이 후련해지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필요는 없지.라는 양면적인 부분도 있던 차에.

 

근무 4주차

자전거를 배울 때 어느 순간, '이제 됐다'라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업무를 인수인계 받으면서도 매일 매순간이 새롭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에서야 아..이제 알겠어.라는 느낌이 왔다. 보통 프로젝트를 할 때 늦어도 2주 정도면 업무 파악을 하는데 이곳은 4주나 걸렸다. 안개가 걷히고 명확하게 보이는 순간 주도권은 내게 넘어오게 된다. 

 

오전에 급한 업무가 들어와서 쳐내고 있는데 돼지가 줄기차게 메일을 보내는 동시에 끊임없이 메신저로 뭔가를 확인해대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옆에 다가와 선 돼지는 뜬금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시작된 이거 알아요? 들은 적 있어요? 인수인계를 받았다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전혀 안된것 같아요. 류의 신경을 긁는 말만 골라서 한다. 대충 대답하다가 빡이 친 나는 흘낏 쳐다보며 '저 지금 이거 빨리 끝내야 하는데, 나중에 말씀하시면 안될까요?'라고 하니 흠칫 물러선다. 

 

잠시 후 사업관리 이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돼지가 면담을 하자는데 무슨 일 있냐고. 상황을 들은 그는 알겠다며, 이 참에 돼지를 쳐내겠다고 했다. 내가 나가야지 무슨 소리인가.했지만 원래부터 내보내려고 벼르고 있던 차에 잘됐다고 했다. 돼지는 한달 뒤에 나간다는 말을 동네방네 퍼뜨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은 돼지와의 통화내용은 기가 찼다. 오늘 퇴사 의사를 밝혔으니 8월 다 안채우고 나가도 되지 않느냐.고 으름장을 놓던 그녀는 이사의 냉정한 대답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이사는 고객들을 만나 그녀가 퇴사하고 싶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대신 인수인계를 철저하게 받아서 업무 공백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돼지가 나가면 분위기는 좋아지겠지만 내가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되는데 이거 맞게 흘러가는건가. 나 그만 둬야 하는데. 이게 아닌데. 그나저나 얼마나 인수인계 잘해주는지 두고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