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비광 나왔네. 내가..돈 있으면...어..어..내려놔. 어딜 가져가..내가 하고 싶었는데.. 조사장꺼가 되려고 그러나. 안그래?
매운 담배연기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다. 복덕방 최씨가 바닥에 남아있던 화투장을 모조리 쓸어 가는 것을 뭉큰한 눈으로 쫒으면서도, 그가 말한 고시원 건물이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나 돈 없어. 하고 싶어도 못해.
/에이..왜 그래. 이번에 집 옮기려고 찾아놓은 돈 있잖아.
순간, 아차 싶었지만, 돈 냄새라면 귀신같이 맡고 들러붙는 하이에나들 아닌가. 내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일찌감치 주머니속 동전 헤아리 듯 셈이 끝났을 것이다.
/하옇튼, 빨리 계약 안하면 금새 넘어가니까, 내일 연락달라구. 나도 붙잡고 있는 거 한계가 있어.
먹고 살겠다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장사하면서 고생만 했던 아내가 늘그막 살림재미를 느끼는 것을 알기에, 다시 무언가를 하자고 하기에는 미안함이 앞섰다. 하지만, 그나마 내 손에 쥐어지던 돈구멍이 없어지고, 해마다 떨어지는 은행이자만으로는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당신, 또 부동산 그 놈들이랑 놀다 왔지? 그 사람들이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는줄 알아? 당신 돈 뜯어먹을려고 그러는거야. 맨날 여자들이랑 여관이나 가고..아주 질 나쁜 것들이야.
/아냐. 그냥 술 한잔 하고 온거야.
/술값도 맨날 당신이 내잖아. 화투 치는 것도 그래. 그것들이 얼마나 잘 치는데. 당신은 거기 가면 밥이야. 밥.
/가끔 나눠서 내. 내가 바보야? 다 내게.
사실, 오늘도 5만원 넘게 잃었다. 처음엔 따는 가 싶다가도, 일어설 때쯤이면 지갑이 탈탈 털린다. 안되겠다 싶어 구경만 하겠다고 맘 먹은 날도, 정신을 차려보면 쓰리고에 광박을 뒤집어쓰고 있다.
/저기..고시원 하나 나온게 있다는데..
과일을 깎던 아내는 들은 체도 안한다.
/급매로 나와서 조건도 좋아. 금방 나갈 물건이래.
/급매로 나왔다면 뭔가 이유가 있는거야. 금방 나간다고 그러는건 다 업자들 말이지.
아내는 깎은 사과를 내 앞으로 내밀더니, 자신의 입에도 하나 가득 물어 넣는다.
/아냐.. 이번건 달라. 진짜 물건이래.
/하옇튼..당신은 정말..만약 하더라도, 난 장사 안해. 당신 혼자서 해.
/그래. 당신은 그냥 집에 있어. 사람두고 하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어때. 지금 당장 보러갈래?
언제나 그랬듯이, 아내는 신중했다. 한달 여동안 고시원 주변의 상권을 탐색하고, 근처 상인들에게서 실질적인 정보를 듣고, 고시원을 들고 나는 사람들을 주의깊게 관찰한 결과, 큰 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밥술은 뜨고 살겠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밤에는 총무가 따로 있어, 직장인마냥 퇴근이 가능했고, 아침에 밥만 해놓으면, 각자 알아서 먹고 치워놓는 방식이라 손이 많이 가지도 않았다. 그랬다. 모든 것이 다 알아서 돌아가는듯 했다.
고시원을 인수한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어느정도 일이 손에 익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이 반쯤 담겨 있을 때, 보는 시각에 따라 반이나 남았네.와 반밖에 안남았네.로 나뉘듯이, 달력에 표시된 방값 입금일은 내일이면 돈이 들어오네.의 경우와 혹시 돈 안주면 어떻하지.로 나뉘었다. 30여개의 방값 들어오는 날짜가 다르다보니, 매일매일이 지옥이 되는건 순식간이었다. 들어오는 돈 보다는 쌀값이며, 전기세, 수도세 등 나가는 돈만 점점 더 부풀려졌고, 빈 방이 늘어날 수록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아내는 장사를 하려면 크게 생각해야지 사소한 일에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고 대꾸하면서도, 아침에 같이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사무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내가 불안한 마음이 들때마다 확신에 찬 얼굴로 안심을 시켜주었다. 2주일 정도 지나자 우려했던 만큼 방이 비지도 않았고, 현금이 꼬박꼬박 손에 쥐어지는 재미에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복덕방 최씨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가 사무실에 있다고 하니, 근처 다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조사장, 요즘 어때? 장사 잘돼?
/그냥 그렇지 뭐.
/근데..이거 말해야하나..사실, 나도 몰랐었는데, 고시원 근처에 재활용품 처리장이 들어선다고 하더라구.
/응? 근데, 왜?
/허허..이 사람아. 재활용품이 뭐야. 쓰레기 모아다가 쌓아놓는거잖아. 그럼, 먼지 나지, 냄새 나지, 벌레 꼬이지. 그럼 고시원 사람들이 들어오려고 하겠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색되어 갔다. 간신히 진정되었던 온갖 우려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그러니까, 지금 팔 수 있을 때 빨리 파는게 낫잖아. 내가 다 조사장 생각해서 말해주는거야. 내가 살 사람 알아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지만..개업한지 한달도 안됐는데..
/그러니까, 손해보기 전에 빨리 팔자는거야. 나중에, 누가 사려고나 하겠어?
저녁을 먹으면서 넌지시 아내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니,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최사장, 그 사기꾼 자식. 당신한테 이중으로 복비 뜯어내려고 수작 부리는거야. 몰라?
/그래도, 그냥 빨리 파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중에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안들어오면 어떻게 해.
/하여튼..왜 그렇게 남의 말만 들어. 그 놈 다시는 만나지마. 쓸데없는 생각도 하지말고. 지금 들인 돈이 얼만데.
이후로 최씨에게서 걸려온 몇 통의 전화내용은 그렇지않아도 뜬눈으로 밤새 뒤척이느라 피곤한 눈깔에 핏물이 스며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절망을 안겨주었다.
/큰일이네. 벌써 소문이 쫙 퍼졌어. 제 값 주고 팔기에는 때를 놓친 것 같아.
/정말이야? 그럼 어떻게 해. 알아봐준다고 했잖아!
/아, 글쎄, 조금만 더 기다려 봐. 근데, 한 천만원 정도 내리면 거래가 될 것같은데, 어때?
/뭐? 천만원? 그럴거면 안팔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갈 수록 점점 더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결론에 이르고보니, 하루가 몇 분처럼 느껴졌고, 금새 날이 밝고, 해가 졌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밥은 커녕 숟가락을 들어올리는 것도 힘겨웠다. 아내는 이런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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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한거야. 조사장. 마침 나선 사람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훨씬 크게 손해볼 뻔 했다구. 나도 나중에 욕먹을 각오하고 거래 잡은거야. 술 한잔 사야 하는거 아냐?
/.....................
/아..사람이 소심하기는. 내가 다른 물건 또 잡아 줄테니까, 걱정하지마. 또 좋은 매물 나오면 연락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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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기분은 어때?
/응? 갑자기 왜? 그냥 그렇지 뭐.
/그럼 엄마한테 말씀안하셨나보네. 아버지도 참..일단, 너만 알고 있어.
고시원을 팔기로 한 이후로 아버지는 엄청난 공포에 시달렸고, 그렇다고 엄마에게 털어놓을 용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전이라, 지원군이라고 택한 것이 오빠였다.
/주말에 갈테니까, 내가 어떻게든 해볼께.
/아니..아빠는 도대체 왜 그래? 어떻게 그런 큰일을 상의도 없이 할 수가 있는건데.
/넌 그냥 가만히 있어. 괜히 먼저 말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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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식사자리인지라 고기를 굽느라 분주한 엄마의 얼굴은 즐겁기 그지없다. 채 익지도 않은 고기를 연신 집어 입에 넣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내 속이 고기전골마냥 진하게 졸아든다.
/당신도 참..천천히 먹어요. 안 뺏어먹어. 너도 많이 먹어. 뭐하고 있어.
/네. 엄마도 좀 드세요. 제가 구울께요. 근데..엄마..있지..
/아냐. 넌 먹기나 해. 회사생활하기가 좀 힘드냐. 자. 얼른 먹어. 당신은 밥 더 줄까?
/응. 한 주걱만 더 줘봐. 고기가 참 연하네.
/엄마..저..고시원말야..
오빠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허공에서 젓가락만 놀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결국, 총대는 내게 넘어왔다.
/아버지, 이제 엄마한테 말해요. 언제까지 숨길거야.
/마..마..말하긴 뭘 말해.
입안에 고기를 가득 문 채로 고개를 푹 숙이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진정으로 엄마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 고시원 팔았대.
일순간, 모두 움직임을 멈춘 상태에서 고기연기만 폴폴 위로 솟아올랐다 흩어져갔다. 한참동안 입을 벌린 채 뻐꿈거리던 엄마는 집게를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뭘 팔아?
/재활용품 수거장이 생기면, 훨씬 더 손해보잖아. 그래서 판거야. 빨리 팔아야 손해를 안보지.
/내가 그거 신경쓰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당신 정말 왜 그래? 미쳤어? 그 새끼가 당신가지고 장난친거잖아. 이 등신아!!!!!
/어허..아니라니깐. 샀던 가격 그대로 받았어..
/오픈하고 들어간 돈이 얼만데. 그건 돈 아냐? 복비는 어쩔껀데. 그건 공짜야? 어떻게 나한테 말도 안하고 팔아?
그 날 이후로 엄마는 입을 닫고, 하루종일 침대에만 누워 지냈다. 물론, 고시원에 나가지도 않았다. 남은 계약기간동안에도 할 일은 남아 있었지만, 아버지도 차마 엄마에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며칠 후 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 엄마는 아무말 없이 나갈 채비를 하고, 고시원에 도착해서 최씨 일행을 기다렸다.
/어이구. 사모님도 계셨네. 이번에 아주 큰 손해 날 뻔했어요. 계약서는 이미 다 썼고, 오늘은 복비만 주시면 됩니다. 어디가서 식사라도 하시죠. 제가 낼께요. 하하하하하하.
아버지 뒷편에 앉아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던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최사장. 복비 말야. 너무 비싼데, 다 받는건 좀 그렇지 않아?
/아니, 무슨 소리야. 어쨌든 이것도 엄연한 거래인데, 그렇게 말하면 안돼지. 다 내가 감안해서 말한거야. 흠..흠..
갑자기, 엄마가 아빠를 한쪽으로 밀쳐내고 앞에 나와 앉았다.
/바깥양반 체면도 있고, 여자가 나서면 모양새가 안좋으니까 내가 왠만하면 아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이거 엄연하게 말하면 사기잖아요. 내 말이 틀려요? 어디서 어리버리한 사람 하나 잡아가지고 장난질이야?
/아니, 사모님. 그..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돼죠. 사기는 무슨..
/뭐라구요? 법적으로 따져도 복비가 100만원도 안되는데, 무슨 300만원이나 받아 처먹겠다는거야? 콩밥을 먹어봐야 이따위 장난질을 못치지. 어디 한번 경찰 불러다 해볼까?
/아..조사장. 사모님이 뭘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일단, 나중에 내가 전화할께.
이후로 아버지는 예전 생활로 돌아갔다. 아침이면 일어나 TV를 보며 모닝커피를 마셨고, 틈틈히 등산을 했으며, 저녁 늦게까지 TV를 보다가 슬그머니 안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엄마는 아무말 없이 밥을 하고, 국을 끓였지만, 아빠와 함께 먹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나갔다 온 아버지는 경비실에 전화를 걸어 누군가 자동차를 훔쳐갔다며 화를 냈다.
/차가 없다니깐요. 맨날 세워뒀던 곳에 없는데, 훔쳐간거지, 그럼. 도대체 경비를 이따위로 해도 되는거야?
구입한지 17년이 지나 보험평가액도 50만원밖에 되지 않는 자동차를 누가 훔쳐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확인하고, 다시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와 다시 욕설을 하며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참다못한 엄마가 어딘가에 있겠지. 잘 생각해보라는 말을 했으나, 이미 아버지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경찰에 도난신고를 한 이틀째 날 전화가 걸려왔다. 단지 옆 동사무소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는 소리에, 아버지는 그제서야 전날 인감증명서를 떼러 동사무소에 갔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이렇듯 기막히게 기억이 사라졌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자리에 눕고 말았다.
엄마가 방에 들어와 가만히 앉더니 안방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였다.
/아버지가 스트레스 받아서 저러나보다. 치매걸린 줄 알고 놀랬나봐. 앞으로 고시원 이야기는 꺼내지 말고. 뭐라 하지도 마. 괜히 충격받아서 큰 병 생기겠어.
/엄마는 참 속도 좋수.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미워?
/그럼 어떻하니. 가족인데. 남같으면 못하지. 그러니까..너도 아빠한테 말도 걸고. 잘해. 저녁엔 고기 좀 구워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