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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나를 안다는 것

by iamlitmus 2021. 11. 8.

난 내가 무척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줄 알았다.

활자중독증으로 엮은 나만의 단어장이 꽤나 두툼해서 아무하고도 매끄러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었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천직인 것 같아 몇 개월마다 바뀌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일주일 정도면 1년 넘게 알던 사람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알았다. 

 

난 내가 할말은 다 하고 사는 똑순이인 줄 알았다.

부당한 상황을 절대 참지 못하고 잔다르크처럼 선봉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행동으로 인해 나비효과처럼 뭔가 좋은 쪽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힘들더라도 너밖에 없다. 역시 너구나.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이들과 함께 할 때의 나는 완전히 달랐다.  깊은 산속 어두운 동굴 속에서 영원히 숨어 있고 싶다가도 누군가와 함께 숲속을 걷고 싶은 마음이 오고갔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방법을 몰랐고, 뭐든지 노력만 하면 어떻게든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면서도 마음 속 서랍 한켠에 그림자를 접어 넣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애정결핍으로 인해(사실, 애정결핍이 없는 이를 찾기 어렵지만) 다른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함과 동시에 인정욕구도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표현이 무척이나 서툴러서 누군가와 함께 할 때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마침내 혼자가 되었을 때는 진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무조건 남에게 맞춰주면 나를 좋아해줄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았던 것 같다. (과거의 나에게 술한잔 사주며 위로해주고 싶다.)

 

다행히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 수록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업무 외 사적인 관계는 거의 만들지 않았고, 남들이 뭐라하던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결단을 내렸고, 그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하거나 곱씹는 일은 하지 않는다. 서운하고 원망했었던 이들과도 무덤덤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단, 절교는 이야기가 틀리다.) 연애를 할 때도 이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영원한 건 없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가능하면 위해주고, 참고, 맞춰주려고 한다. 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겨서 행복하다.

나에 대해서 한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매일매일이 많아서 든든하다. 

쓸데없지만 해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내일에도 감사하다. 

(에어프라이기로 군밤을 굽거나 고구마스틱을 만들어볼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