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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미대오빠 & 금성에서 온 공대언니

난 언제나 그랬었다

by iamlitmus 2023. 12. 1.

미대오빠가 을지로 외근을 나오는 날이어서 퇴근 때 만나기로 했다. 저녁메뉴는 항상 가던 곳을 가자고 할 것이다. 그는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 하지만 한번 괜찮다 싶으면 주구장창 그것만 먹는다.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지 않음)
5개월 째 점심메뉴가 김밥 한 줄(매일 먹어도 맛있다. 내가 이상한건지 김밥이 맛있는건지)인 나로서는 저녁만큼은 제대로된 음식을 먹거나 새로운 곳에 가고 싶다. 
 
일단, 약속이 정해지면 주변에 괜찮은 식당과 카페를 검색한다. 미대오빠의 취향에 맞는 곳을 찾아야 한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는 그에게 빡쳐 전적으로 맡겨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냥 내가 하고 있다. 
 
-사람이 많거나 좁은 곳은 피해야 하고 무엇보다 깨끗해야 한다. (별점이 4.5 이상은 되는 곳을 고르지만 성공률은 그닥 높지 않다.)
-아무리 맛집이어도 대기를 하면서까지 먹지 않는다.
-배달음식은 먹지 않는다. 직접 가서 먹거나 포장을 한다. (배달원처럼 낯선 사람과 마주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
-길거리 음식도 먹지 않는다. 걸으면서 뭔가를 먹는 것도 불가하다. (음료수 포함)
-냉동음식과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지만 햄버거나 피자, 치킨, 중국음식은 한달에 한 번 정도 먹는다. (그나마 라면은 1-2주에 한 번)
 
이 얼마나 진정스러운 까탈스러움이란 말인가.
이걸 맞춰주는 나는 또 얼마나 대단한건지.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것을 그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닥 인정받고 싶지도 않고 나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은 없다. (쌤쌤이라고 여김)
 
어쨌든, 오늘의 메뉴는 인사동에 가면 항상 방문하는 조금의 솥밥. 정갈하게 차려입은, 말 수는 적지만 은근 자기 고집이 있는 중년의 맛이랄까. 수저를 움직일 때마다 어떻게 이런 고급진 맛을 낼 수가 있지? 거진 2만원에 달하는 음식 값 따위는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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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솥밥 19,000원. 내용물이 가득 들어차있어 수저도 잘 안들어감

 
디저트로 떡싸롱을 먹자고 하는데 그건 무리이고,

 

떡싸롱 인사동점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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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는 새로 발견한 커피브론즈 카페. 문을 닫은 건지 찾지 못해 골목만 냅다 빙글빙글 돌다 다른 곳에 갔다. 

 

커피브론즈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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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레이어드 안국점

가게를 들어서자마자 석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난로를 피우나 싶었는데 옆건물에서 공사를 해서 그렇다고 한다. 문을 닫았는데도 이렇게 심하다구? 뭐. 어쨌든. 한옥을 개조해서 만들었기에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좌석도 몇 개 없고 협소하다. 주말때는 들어가는 것 조차도 힘들 것이다. 스콘2개, 커피 2잔을 주문했는데 2만원이 훌떡 넘는다. 수긍이 갈 정도의 맛은 아니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고 좁다. 오늘은 계획이 어긋나서 가장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았기 때문)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예쁘다
개당 5천원이 넘는다.

 

 

카페 레이어드 안국점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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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라 해가 빨리 져서 어둡다. 미대오빠는 어두울 때까지 바깥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조건 밝을 때 돌아다녀야 한다. 미대오빠는 좀 돌아가더라도 사람이 없는 버스를 타고 싶어하고, 난 지하철을 타고 빨리 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는 버스 정거장이나 지하철에서 기다리면서도 절대 의자에 앉지 않는다. (먼지가 쌓여 있어서 옷에 묻는다고 생각함)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무조건 앉는다. 차를 타서도 가능하면 뒤로 가서 앉는다. (앞에 앉으면 노인이 탔을 때 양보해야 하므로) 옆자리에 앉은 누가 밀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내 쪽으로 더 붙는다. 저리 좀 가라고 해도 남한테 싫은 소리를 하느니 죽어버리는게 낫다는 표정으로 이를 앙다문다. 
 
이런 그를 마다하지 않고 만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킬 만한 대단한 장점이 있다는 건데, 그것이 뭔지 좀 생각해봐야겠다. 한가지 분명한 건, 사랑은 아니다. 

/오빠는 뭐라고 생각해?
/음..매직?

듣고보니 유치하지만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