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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오늘은

by iamlitmus 2012. 5. 12.

1.

한 무리의 젊음들이 크게 웃는다. 섀된 목소리를 지닌 여자애는 특히나 더 크게 웃는다.

사람들이 눈치를 주듯 쳐다보면, 더욱더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듯 아까보다 목소리가 더 커진다.

 

이 때, 한 쪽에서 노인의 목청이 터진다. 손톱 끝만큼 바짝 깎은 머리, 베이지색 바지와 옅은 초록색 점퍼를 입고 있다.

아무데서나 먹고 자는 입성은 아니다. 제 정신은 아니지만, 요양원에 들어갈 정도는 아닌 듯 싶다.

예수라는 단어가 나오자, 사람들은 흔하디 흔한 교회쟁이라고 생각하는 듯, 일제히 귀를 닫는다. 나라가 망해간다고 했다가, 존대말을 했다가, 반말을 한다. 젊은이들이 숨을 죽인다.

 

2.

5.18은 반란이다.

라고 씌어진 소책자를 든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노약자석에 버젓이 앉아 있는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옆자리의 노인에게 말을 건다.

'이 것 좀 보세요. 5.18이 민주화입니까? 그래요? 이건 북한군이 내려와서 저지른거예요. 우리나라에는 좌파들이 너무 많아요.'

그의 가슴팍에는 '대한민국무공수훈회'라는 명찰과 함께 수많은 만국기가 달려 있었다.

건너편에 앉은 중년남자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5.18은 민주화 항쟁이죠. 민간인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반란이예요.'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입을 벌린 채, 잠시 당황한다. '하참..저런 사람들때문에 큰일이야..' 동조를 구하려는 듯, 다른 노인들을 쳐다봤지만, 그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3.

좁은 식당이었다. 게다가 금요일 오후 시내의 중심가였다.

몸을 세로로 비틀어야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식당에서 외국인 남자가 유모차를 접고 있었다.

저 만치 떨어진 테이블에는 그의 동양인 아내와 2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안겨있었다.

아이는 컵을 테이블에 두들겨대거나 바닥에 집어 던졌고, 나 말고는 아무도 쳐다보는 이가 없었다.

잠시 후, 아이는 몸을 뒤틀어대며 소리를 질렀다. 다시 뒤돌아봤을 때 외국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짓지도, 당황한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쳐다봤다.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설 때까지도 그들은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아이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김밥을 말던 아줌마는 그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