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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추석연휴 3일차

by iamlitmus 2023. 9. 30.

1일차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거실에서 녹두전을 부치고 있는 엄마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버지는 안방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역할은 다 해놓은 음식의 간을 보는 일에 한정되어 있다. 노동복으로 갈아입고 해동시킨 동태에 밀가루를 묻힌 뒤 달걀을 풀어 마저 부치기 시작했다. 미리 사놓은 막걸리를 곁들여 마시니 그닥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2일차

길음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기에 좀 더 일찍 집에 도착해서 음식을 준비했다. 나물과 도토리묵을 무치고 밥상을 다 차렸을 때 오빠와 올케가 도착했다. 장례를 마무리하고 온 오빠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지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처음 겪어본 일이라 아무 것도 모르고 치루자니 당황스럽고 힘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여전히 납골당이니 뭐니 다 필요없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 조차 싫어하는 눈치였다. 오빠가 그나마 대기업에 다닐 때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자 아버지는 벌컥 화를 냈다. 하루종일 잠을 자거나 TV만 보면서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맘같아서는 아버지는 화장한 뒤 선산에 뿌리고, 엄마는 따로 모시고 싶다. 죽어서까지 같이 있고 싶지는 않잖아? 물으니 모두 웃는다. 진심인데. 

 

3일차

날씨가 너무 좋았다. 미대오빠는 성묘하러 새벽에 나갔다. 큰 집에서 성묘를 오지 않은 것 같다고 그렇게 관리할 거면 왜 선산 명의를 다 가져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장손집에서 알아서 하는거지. 베키를 타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에 가서 커피를 사왔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지만 외진 동네 골목에 위치한 카페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망리단길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모두들 갈 곳 잃은 사람들같다. 한 시간 남짓 돌아다녔는데도 너무 피곤했다. 이런 식이면 치앙마이 한달살기는 커녕 일주일도 못버틸 것 같다. 

 

 

읽다_경우 없는 세계(백온유)

멈춤 없이 술술 읽히는 책들이 있다. 말하는 것처럼 노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하듯, 책도 그렇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기에 지루하거나 두서가 없는 경우 끝까지 읽기 어렵다. 영상이나 특수효과가 없는 글자를 읽으면서 지속적인 호기심을 갖고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출 청소년의 이야기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 또한 읽기 어렵다. 가정폭력, 가난, 따돌림 등 어두운 이야기나 참혹한 역사적 현실, 전쟁 등도 읽고 싶지 않다. 내가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우울감에 다른 재료를 더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인지 냉정하고 객관적인 책들을 주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위에 서술한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다.

 

가출을 한 주인공은 이상한 애도 만나고 쓰레기같은 애들과도 함께 지내게 되는데 그 중에 만난 경우라는 애는 뭔가 달랐다. 그게 뭘까. 사랑 받고 자란 애들은 뭔가 다르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우라는 애는 너무나도 불행한데 왜 저렇게 바르게 살려고 애쓰고 희망을 갖고 사는걸까. 잔뜩 망가진 채로 주저앉아 그를 바라보는 주인공은 자신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내려고 발버둥치는 경우에게 시기를 넘어선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뒤로 한채 고통스럽기만 현실을 살고 있는 주인공에게 경우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다른 이를 도울 기회가 생기게 되면서 항시 몸을 떨게 했던 냉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보다_사랑하는 아이(넷플릭스)

총 6편의 독일 드라마. 13년 전에 레나라는 여대생이 납치되었다. 5개월 동안 감금되어 있다 탈출한 여성과 12살짜리 여자아이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철저한 감시와 통제 하에 왜곡된 현실을 믿으며 성장한 아이들과 레나라는 엄마 역할을 위해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납치되고 살해당한 사건을 중심으로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다.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 빠른 전개와 적당한 잔인함, 끝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연출이 뛰어나다. 

 

보다_웨스 앤더슨 시리즈(넷플릭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쥐잡이 사내

-독

-백조

로알드 달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웨스 앤더슨의 단편영화다. 설명이 필요없다.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는 예쁘고 각잡힌 영상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