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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이불밖은 위험해

by iamlitmus 2021. 11. 26.

집콕 한달여만에 지인 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퇴근 인파로 가득찬 전철에 구겨져서 가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든다. 일을 다시 하게 되면 매일 이런 생활을 반복하게 되겠지. 큰 소리로 떠드는 여자들의 사적인 대화도 억지로 들어야 하고, 역마다 쉴새없이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몸을 더 접어줘야겠지. 약속장소인 사당역은 불야성이다. 가게마다 사람들로 가득차있다. 

 

내가 술마시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미대오빠에게는 가족식사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처음엔 오랜만에 얼굴들을 보니 반가웠지만, 대화 주제는 온통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이었다. 집값이 2배로 뛰었네, 누가 몇 십배 수익을 얻었다더라. 온통 돈이야기 뿐이었다. 나는 적게 벌고, 아껴 쓰더라도 서울을 떠나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더니,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리를 옮겨 2차를 가려는데, 소상공인 지원 안해도 되겠는데 싶을 정도로 가게마다 만석이다. 술이 술을 마시다보니 전철은 이미 끊겨 버렸다. 대부분 배달업계로 이직을 해서 택시잡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호출 후 금새 잡아탈 수 있었다. 택시 내에는 네비 외에도 3개의 단말기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었다. 택시기사도 스마트기기를 잘 다루지 않으면 안되는건가. 신호대기 중 합정역 사거리의 스마트버스정류장을 보던 기사 아저씨가 승객들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렇게 쓸데없는걸 만드는 건 세금낭비가 아니겠냐고 물었다. 몇달전부터 홍대입구와 합정역에 설치하느라 엄청난 공수를 들여 공사를 했었던 정류장시스템이었다. 그러게요. 마포구는 부자인가봐요. 강남의 어딘가는 길바닥에 틀어주는 에어컨도 있다고 그러던데. 

 

요즘 택시는 카카오택시앱에 등록한 카드로 자동결제가 되기 때문에 별도로 태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버스 아니면 전철, 그나마 요즘엔 베키를 타고 다니느라 택시 탈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사당에서 합정까지 오면 만6천원 정도가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해둔다.

 

다음날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눈을 떴다. 더불어, 엄청난 자책감이 밀려 들었다. 왜 난 항상 주체가 안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걸까. 왜 난 중간에 나와 집에 갈 생각을 안하는 걸까. 왜 난. 왜 난. 

 

아랫집에서 틀어놓은 트롯트 음악소리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얼마전 층간소음때문에 칼부림이 났던 빌라사건이 있었다. 아파트에 오래 살았던 나로서는 빌라의 취약한 방음때문에 놀랐다. 밑층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바로 내 앞에서 벌어지는 것 같다. 창문을 열어두는 여름같은 경우에는 몇 배 더 심하다. 쪽지를 써서 붙여볼까도 생각했지만, 미대오빠는 이웃간에 괜히 얼굴만 붉히게 된다며 말렸다. (복도에 자전거를 놔두는 건에 대해서는 미대오빠가 먼저 쪽지를 붙였다. 물론, 2대나 세워놓은 옆집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표정이 굳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청소기를 밀거나 커피를 내릴 때, 절구로 견과류를 빻을 때 아랫집에서도 고스란히 느낄까? 

 

어쨌든, 당분간은 반성하며 수도승같은 생활을 하기로 한다.

이불밖은 너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