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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8월 25일 저녁일기

by iamlitmus 2022. 8. 26.

예전에 알던 지인은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말했었다. 몇 십년동안이나 다니는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놀이동산에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재미없는 놀이기구가 많아서 그렇지 재밌고 좋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가 쓴 글을 읽어보면 모든 것이 지리멸렬하고 덧없으며 허무로 가득차 있었다. 술에 취해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부정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넌 어쩜 그리 대단하니. 넌 정말 대단하구나. 하지만 기분이 틀어졌을 때는 단호했다. 됐어. 그만해. 기분 상하고 싶지 않아. 

 

요즘 출근할 때 그 사람의 태도를 떠올린다. 난 놀이동산에 가는 중이다. 재밌는 기구도 있고, 별로인 것도 있지만 한달동안 잘 타고 놀면 돈도 준다. 어떤 때는 난 지금 외국에 일하러 왔다. 낯선 곳이지만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안가본 동네 근처도 산책하고 커피 순례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고 일상이 항상 새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지도에서 찾아낸 음식점과 카페를 가보기로 했다. '유가'라는 중식당은 맛있는 녀석들이 다녀간 곳이라고 한다. 누군가와 같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 가서 즐기고 싶었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더듬거리며 찾아 가는 건 즐거웠다. 오픈 시간에 맞춰갔는데 벌써 몇몇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직원들의 대화가 중국어로만 하는 걸 보니 화교가 운영하는 것 같다. 가장 기본인 자장면 주문. 미리 만들어놓은 춘장을 부어서 나오는거라 1분도 안되서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양념이 너무 적은데. 싶었지만 한 입 딱 넣는 순간 아..이렇게 맛있다는건 설탕과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거임. 부터 떠올랐다. 하지만 면에 묻은 양념만으로 간이 맞았고 너무 맛있어서 순식간에 비워냈다. 

 

 

11:30부터 영업 시작
자장면 6천원. 다른 메뉴들도 궁금해졌다.

 

다음에 들른 곳은 '베이크올러지'라는 작은 카페. 마카롱이 맛있는 집이라고 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에스프레소. 기대했던 맛은 아니었지만 가격대비 SoSo. 무엇보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5분이나마 완벽하게 커피 맛을 음미하는 시간이 찡하게 좋았다. 

 

에스프레소 2,500원
비맞은김에 세차하자. 이번주엔 꼭 엔진오일 교체해줄께.

밥먹고 커피까지 마셨는데도 30분이 채 안걸렸다. 그냥 사무실에 올라갈까 하다가 1층에 있는 만화의 집에 가서 배가본드를 봤다. 이젠 속도가 붙어 3권까지도 후다닥 볼 수 있다. 업무 시작 10분전. 양치를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베키를 타고 회현동에서 합정동까지 오는 길은 험난하다. 한적한 망원동 뒷길을 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다. 목숨걸고 달린다는 기분이 든다. 제발 깜빡이 좀 켜라. ㅆㅂ것들아. 

 

집에 도착하니 미대오빠가 요리를 하고 있다. 어찌나 기특한지. 이러저러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대기업 제품이 최고다. 밥을 먹고 함께 뉴스를 보며 신나게 품평회를 했다. 백날 욕을 해봤자 달라지는건 없겠지만. 

유일하게 미대오빠가 잘만드는 파스타

 

행복한 오늘 마무리는 주술회전 캐릭터들이 추는 다이너마이트. 내일도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