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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비정한 식탐

by iamlitmus 2007. 3. 26.
정확히 아침 7시였다. 온 집안이 돼지 불고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 일어나서 고기 먹어라.
아빠/ 진짜 맛있네.
아침엔 물조차 마시지 않는 나에게 있어서 그들의 왕성한 식욕에 대한 느낌은, 감탄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약한 감이 있다.

학기 마지막 프로젝트 제출일 이었다. 오후를 한참 넘겨서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희미한 고기 내음을 감지했다.
엄마/ 밥 먹었어?
나  / 아니. 아침에.. 그 고기 줘.
엄마/ 어? 그거 아빠가 다 먹었는데?
아빠/ 아냐. 내가 조금 남겨뒀어.
엄마/ 남겨두긴..뼈다귀 하나 남았구만.

화..화가 났다. 아빠의 몰인정한 식탐에 대해 맹렬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 나는 엊그제 친구들과 안창살과 갈비살을 먹은 것도, 그그저께 육즙이 흠뻑 배어나오는 숯불갈비와 게장백반을 먹었던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빠/ 내가..지금 고기 사올까?
엄마/ 관둬. 언제 사와서 해먹어. 국물 남은 거 버려야겠네.
아빠/ 어..어..그거 놔둬. 이따가 밥 비벼 먹을거야.
엄마/ 하긴..밥 비비면 맛있을거야. 너..그냥 남은 뼈다귀라도 먹을래?
나  / 안먹엇!!!

지금 이 순간만은, 고기를 사주기만 한다면 애 셋 딸린 홀아비한테라도 시집가고 싶은 심정이다.

다음날, 엄마와 식탁에 앉았다.
/나..있지..웃긴건 아는데..어제 고기 못 먹어서 진짜 화났었어.

엄마는 가볍게 눈을 흘기셨다.
/너..아빠 몰라?
/그건 아는데..그래두 너무 화가 나더라구.

한참동안..침묵이 흘렀다.
/수제비..맛있어?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