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큐브에서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를 봤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지식인들(특히, 영화관계자들)의 난체하는 모양새를 비꼬는 내용을 주로 다루는데, 배우들이 마주하는 일상속의 유치한 대화들이 우리들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오히려 피식. 비웃어 주며 남몰래 뒷담화하는 것 같은 쾌감마저 든다.
꼭 사랑을 해야만 할까요? 연애말고 사랑이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유를 달고 행동하는 일은 거의 없어. 그냥 하는거야. 저는 빨리 나이들고 싶은데, 그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버티죠? 제가 영화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자꾸 시도하다보면 네 자신이 깨닫게 될거야. 넌 착해서 좋아. 난 공정해지고 싶은데, 네가 그 녀석이랑 계속 연락하면 어쩔수 없이 난 공정함을 잃어버려.
대사들이 참 좋았다.
영화를 보고나서 성곡미술관 근처, 2층집을 개조한 카페에서 아이스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 깊숙한 곳에서 몇 군데 자리잡고 있는 와인바나 카페들은 나름 단골들로 가득 차 있다. 날씨는 선선하고, 손잡고 산보하는 사람들이 가끔 지나가고. 이 동네에 올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공기에 추를 단 듯 가볍지 않고 무게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