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새로운 인력(앞으로 K라고 부르겠다.)이 투입된지 보름이 지났다. 돼지는 곧 나간다는 사실에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인다. K가 실무를 처리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어서 대부분의 업무가 내게 몰려 있어 정신이 없다. 어느 정도 업무 파악은 했다 생각했는데 매일 새로운 타입의 업무가 떨어진다.
PL업무는 내가 맡기로 했다. 대신 내가 맡은 업무를 조금씩 K에게 넘기는 걸로 협의했다. 계약만료 시점인 12월까지 버텨야 한다. 중간에 나간다는 선택도 고려했으나 사실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돼지의 업무인수인계방식인데 정작 중요한 것은 알려주지 않고 문서화 작업도 더디다. 이런 상황에 대해 K가 이슈를 제기하자 실무를 하면서 인수인계까지 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토로한다. 어떻게든 살살 달래가면서 업무내용을 전달받으려 하고 있지만 당분간은 카오스같은 구렁텅이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돼지가 철수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명절을 앞두고 일이 몰리고 있다. 출근 한 달째인 K는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진 듯 하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이 남아있다. 두 달 째 일하고 있는 나도 헤매는데 당연하다 여기려 한다. 새롭게 업무 분장을 하고 가능하면 공평하게 업무를 배분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은 많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없이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눈 뜨는 것 조차 힘들 정도로 지친다. 그래도 가능하면 책 몇 줄이라도 읽으려 애쓰고 있다. (최근에 읽은 쥐스킨스의 '향수'는 이틀 만에 독파할 정도로 재밌었다.) 철수하고 나서 여행을 가자 싶어 알아보니 1월 항공권은 터무니 없이 비싸다. 이런 체력으로 여행을 가봤자 하루종일 호텔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커서 그냥 서울에서 쉬자 싶기도 하다. 체중이 6킬로 빠졌다.
돈돈돈
미대오빠는 며칠 내내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걸음도 걷기 어려운 지경이 되자 정형외과에 갔는데 디스크가 터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간단한 시술을 받고 나서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220만원. 이후 진료를 받고 물리치료를 받을 때마다 16만원. 앞으로 몇 번을 더 가야 한다. 미대오빠의 본가 TV의 판넬이 고장나서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영업사원의 능숙한 말솜씨에 휘둘려 가장 고사양 제품으로 구입했다. 416만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을 하다보면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뭘까.부터 생각해봤다. 책을 읽는 것. 그럼 책을 읽어야지. 단순하게 책만 읽을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남기는 작업도 필요하다. 매일 일에 치여 지쳐 쓰러지는 생활을 언제까지 하려고 하는가. 체력도 안되는 이 나이에. 가을이 되니 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