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으로부터 H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을때 반가운 마음은 커녕 불편한 맘이 든 것은 그녀가 영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안 좋은 기억만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H는 M의 대학동기로 M과 중학교 동창인 내가 자연스레 어울리게 된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은 가열차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갖고 있었던 그녀였지만, 10년동안 후배와 사귀고 있던 남자를 보란 듯이 뺏어 함께 떠났던 일은 기초질서마저 중히 여기는 내게 있어 다시는 상종못할 인간으로 낙인찍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가끔씩 한국에 들어올때마다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타인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구는 것을 자유로움으로 착각하는 오만도 참기 어려웠기에,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M에게 딱 잘라서 말했다. /됐다. 더 이상은 아니야. /그럼 이제 영영 안 볼 꺼야? /다시 볼 일 없다. 누구보다도 H에게 배신과 상처를 많이 받았던 M이었기에, 넌 참 속도 좋다.라고 대꾸할 뻔 했지만, 나와는 다른 관계이니 상관할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H가 들어온 것은 그녀의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뇨로 고생하시던 아버님이 합병증으로 인해 두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치뤄내야만 했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님은 치매에 걸리셨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으니 퇴원시키라는 선고를 내렸고, 그녀의 큰 오빠가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넌 H 아버님이 돌아가셔도 안 갈꺼지? /응 M은 잠시동안 질린듯이 나를 바라봤다. 어색한 침묵때문인지 옆구리가 간지러웠다.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온대? /아니. 그냥 영국으로 떠났어. /얄밉다. /뭐라구?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그래. 물론, 내가 그녀의 부모님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져줄수도 없는 거고, 그녀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투자한 것도 있으니, 여태껏 이룬 것을 몽땅 포기하고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얄밉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 부모님들이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 내가 그러지 않으면 되는거니까, 뭐라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 /넌 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면 말해줄꺼니? /글쎄..난 네가 그러지 않을거라는 것을 아니까,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것 같은데.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H의 경우는 워낙 이기적인 면을 많이 봐와서 이번 일도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M의 어머니도 몇년전부터 중풍을 앓고 계셨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직장까지 그만 둔 채 뒷바라지를 한 덕분에 지금은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다시 일을 시작한 그녀는 현재 왕복 4시간이라는 엄청난 출퇴근 시간을 감내하면서도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일을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엄마에게 이야기했을때 엄마는 의외로 덤덤하게 말했다. /남의 일이니까 쉽게 말할 수 있는거야. 직접 해보라고 해봐. 못하지. 그렇다. 다른 사람 말할 필요도 없다. 나만 안그러면 된다. 그리고,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고. |
생활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