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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발견

다섯개의 시선

by iamlitmus 2007. 3. 26.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
감독: 박경희. 65년생. 사학전공. <자정에서 새벽까지>, <세친구>각색, <미소>
다운증후군인 인혜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에 다닌다. 어눌한 말투와 듬직한 체구로 인해 '뚱보메기'라고 놀림감이 되기 일쑤지만,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고, 마흔이 넘은 동네아줌마를 제일 가까운 친구라고 여기는 여자애이다. 보이지않는 가짜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해해달라'고 힘겹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다른 또래들과 다를바 없는 어린 소녀의 그것이다. '저런 애를 왜 밖으로 돌리냐'며 혀를 차는 낯선 할머니, 인혜 앞에서 대놓고 장애인들을 화제삼는 엄마의 친구들 등은 우리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편협된 시각의 일부를 나타낸다.

남자니까 아시잖아요
감독: 류승완. 충남 온양. 영화 독학. 한국의 '쿠엔틴 타란티노'
거나하게 술에 취한 한 무리의 남자들이 포장마차로 들어선다. 엘리트코스를 거쳐 사회적으로 목에 힘주고 사는 남자, 1년째 백수생활을 하며 친구들에게 술을 얻어 먹고 사는 남자, 고등학교를 나와 변변치 않게 살아가고 있는 남자, 그리고 최근 '호모'인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남자. 허풍과 기만으로 가득찬, 그러면서도 얼토당토않은 남.자.적.인 논리로 마무리짓는 추한 삼단논법을 지독히도 사실적이고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술집에 가면 꼭 한 테이블씩 앉아 있는 무리들의 모습들인지라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던 단편.

배낭을 멘 소년
감독: 정지우. 한양대 연극영화과. <해피엔드>, <사랑니>
현이와 진선은 탈북 청소년이다. 현이가 남한애들보다 잘하는 것은 오토바이뿐이고, 학교에서 시달림을 당하거나, 노래방 아르바이트비를 떼이는 진선은 남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예 입을 닫아버리게 된다. 북한에서 왔다는 말에 차를 세우고 파출소로 달려가는 택시운전사는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고마운 사람
감독: 장진. <킬러들의 수다>,<간첩 리철진>,<아는 여자>,<박수칠 때 떠나라>
언뜻 보기엔 학생운동하다 잡혀온 명문대생과 고문관이 보여주는 이념주의적 스토리처럼 보일수 도 있지만, 이 단편의 주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관한 시각이다. 주말도, 아내 생일에도, 보너스도 없이 지하실에서 일해야만 하는 고문관이 자신이 밤새 물고문, 전기충격을 가한 청년에게 오히려 위로를 받고, 알 수 없는 공감대를 교류하게 된다. 장진만의 세련된 연출력과 일사천리적인 대사가 돋보였다.

종로, 겨울
감독: 김동원. 다큐멘터리 전문
혜화동 파출소에서 5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중국동포 김원섭은 동사체로 발견된다. 임금체불 3천여만원을 받으러 간다며 숙소를 나선지 이틀만의 일이었다. 죽기 전 119와 112에 전화를 걸었지만, 취객이 건 전화로 오해한 그들은 '택시타고 가세요'라는 대답만을 들었을 뿐이다. 김원섭 주위인물들과 그의 고향의 이웃들을 통해 황망한 중국동포들의 실태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한 해 천여명의 중국동포들이 자살이나 생활고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한국에 몇 명이나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