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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백수의 묘미

by iamlitmus 2021. 11. 8.

비오는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출근안해도 되는거였지. 하고 다시 돌아누울 수 있다는 점은 꽤 행복함을 안겨준다.

 

아직까지도 몸에 밴 일개미 모드가 바뀌지 않아

이쯤이면 회의를 하고 있을텐데, 조금 있다가 점심시간이구나. 생각을 한다.

베란다 문을 열면 63빌딩 허리정도가 보이는데, 

역시 여의도는 나와 맞지 않았어. 중얼거리며 쥬스와 요거트를 꺼내 시장기를 지웠다.  

 

프로젝트를 할 때 점심시간에는 간단하게 빵이나 김밥을 먹어치운 후, 사무실 근처를 하염없이 돌아다니고는 했다.

팀원들과 같이 먹을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누군가를 신경쓰지 않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예전에 비해 먹는 양이 눈에 띄게 줄었고(반면, 체중은 줄지 않는다. 왜일까) 조금이라도 신경을 튕기게 되면 어김없이 급체를 하고 만다.  양껏 밥을 많이 먹고나서 소화제를 들이키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었는데, 최근 대형마트에 갔을 때 소화제 2박스를 쟁여놓는 내가 되었다. 

 

요즘 유투브를 보면 퇴사 브이로그가 눈에 많이 띈다. 10년 넘게 다닌 회사가 문을 닫는다던지, 무자비한 인턴생활 끝에 해지통보를 받는 등 젊은 날의 나였다면 분명 휘청거렸을 상황을 보다보면 지금의 내가 선택한 자발적 백수는 배부른 상황이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는 일하고 싶어사 하나, 어쩔 수 없이 하는거지.라고 칭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잔인하게 갈아넣었던 나의 건강을 둘둘 감싸 안아주고, 부서진 멘탈조각들을 주워 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철수 후 일주일 정도는 계속 마음이 불안한 상태였고,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눈을 떠서 잠들때까지 하루종일 행복한 마음뿐이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치아바타를 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