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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발견/베트남캄보디아

베트남 호이안 2일째

by iamlitmus 2012. 4. 2.

자전거를 빌려서 다니니 훨씬 기동력이 좋다. 걸어 다닐 수 없는 외곽지역을 돌아다니다 경찰서에 가서 보험사 제출용 서류를 받아보기로 했다.
어떤 대학앞 정문앞에서 학생인듯 보이는 여자애가 보인다. 대충 영어가 통할 것같아 경찰서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어딜 보고 뭐라 한다. 멀뚱히 쳐다보니, 그럼 같이 가자고 한다. 구석진 곳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다. 잠시 후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 2명이 나타났다. 오만해보이는 표정이 마음에 안든다. 전혀 영어를 못한다. 너흰 시험도 안보냐.
여자애가 통역을 하고, 난 그림까지 그려가며 실컷 설명을 했더니, 지들끼리 뭐라 한 뒤 다른 경찰서로 가란다. 권태로운 표정으로 귀찮아 하는 그가 얄미워서, 넌 경찰아냐? 그럼 처음부터 가라고 하지, 내 말 다 듣고 있다가 왜 딴 소리해? 쏘아붙이니, 옆에 있던 여자애가 당황한다. 빨리 자기랑 가자고 하며 내 손을 잡아 끈다.
자전거를 타고 1킬로 미터쯤 갔을까, 좀 더 큰 경찰서로 들어갔다. 당연히 오만해보이는 중년 여자가 잡지를 보고 앉아 있다가는 현지인이 뭐라 말하자,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여권 분실 빼놓고는 폴리스 리포터를 써줄 수 없댄다.

/일단, 내가 설명할께. 들어봐.
/들으나마나 안돼. 분실한건 네 탓이잖아.
/찾아달라는게 아니잖아. 난 보험회사에 낼 문서가 필요한 것 뿐이야. 내 친구도 캠코더 잃어버렸을때 받았어.
/몰라. 못써줘.
그러면서 잡지를 펄럭이며 들여다본다. 아니, 이 년이..
/나 말 안끝났거든. 근데, 너 지금 뭐해? 잡지 보는거야?
/나 너같은 애들 많이 봤어. 소용없어.
/근데, 왜 너 나한테 화내?
/나 화 안났어.
/지금 나한테 소리지르잖아. 목소리 낮춰. 친절하게 말하라구.
이쯤되니 그냥 막 막나가자는 분위기가 된다.
/나 화나보이는게 내 캐릭터야.
/뭐? 앵그리우먼 캐릭터? 그렇다면 나도 나찬가지야.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하니까 그렇지.
/소리 지르지 말라니까? 조용히 말하라구. 정말 베트남 경찰 대단하다. 너 굉장히 인상적이야. 기억할께.
/나도 그래. 넌 좋은 인상은 아니야.
/그것 참 다행이다. 나도 그래
보는 앞에서 종이를 갈기갈기 찢으니, 그녀가 비아냥거린다.
/찢은거 한국에 가져가면 되겠네.
/어구. 고마워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내가 실수한 건 베트남 사람들을 믿었다는 것 뿐이야.
앵그리우먼은 멀뚱대며 쳐다보고만 있다.
/너 지금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아듣기나 하는거야?
그제서야 뭐라 하는데, 그냥 일어나버렸다.
/아. 됐어. 네가 하는 말 듣고 싶지 않아.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그녀의 기분을 잡치게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 같다.
하얗게 질린 채 지켜보고 있던 여자애는 내 눈치를 살핀다.
/괜찮아. 한국도 저런 공무원 많아.
/나도 오토바이 분실한 적 있는데 경찰이 해준건 없었어. 너만 그런거 아냐.
/내가 보기엔 저 여자는 그냥 내가 싫은거야. 그래서 안써주는거지.
여자애가 힘없이 미소짓는다.
/한국말로 저런 여자를 썅년이라고 해.
/상넌?
/어 썅년. 개썅년이야.

노상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여행하면서 궁금했던 질문을 하면 대답하는 식이다.
- 호이안은 누가 제일 부자야?
: 관광객들 상대로 하는 호텔 주인들이지.
- 베트남 남자들은 왜 하루종일 놀아?
: 부모가 부자인 경우가 많아.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건 잠깨려고 하는거야.
- 베트남 남자들은 왜 손톱을 길러?
: 첫번째는 귀를 파려고 그러는거고, 이외에는 잘 모르겠어. 나도 이상해.
- 베트남에 거지가 없는 이유가 뭐야?
: 도시 바깥으로 가면 굉장히 많아. 관광객이 많은 곳은 경찰이 감시해서 없는거야.
- 경찰이 하는 일이 있긴 하네. 넌 무슨 일 하고 싶어?
: 호치민에서 대학 졸업하고, 이곳 하노이에서 영어배우면서 알바하고 있어. 나중에 다낭으로 가서 일하고 싶어.
- 영어하면 호텔같은데서 일할 수 있지 않아?
: 그렇지. 근데, 여긴 자리가 안나.
- 베트남에서는 여자들이 담배를 안피우는 거 같아
: 공기가 안좋잖아.
- 남자들은 많이 피우던데.
: 남자들은 그런거 상관안해.
- 넌 휴일에 뭐해?
: 해변에 가서 수영도 하고, 카페에 가.
- 너 부자구나?
: 아냐. 집 바로 옆이 해변이야. 카페는 친구가 일해.
- 베트남 사람들은 왜 항상 소리질러? 화난 것 같아.
: ㅋㅋㅋ 아. 좀 그래. 저 여자 경찰은 좀 더 심한편이구.


이름도 안물어봤다. 나한테 잘해준 유일한 베트남 사람이다.

오전에 오토바이 헬맷을 샀다. 한국에서 쓰는건 너무 무겁고 답답해서 여행하면서부터 베트남 헬맷을 눈여겨봤었다. 눈치껏 깍아서 6천원. 진짜 한국가서 헬맷장사하고 싶은 맘이 든다. 한국에서 3만원에만 팔아도 대박날거다.

그녀의 시간을 너무 뺏은 것같아 같이 밥먹자고 했더니, 한사코 싫다고 한다. 나도 먹긴 해야하니, 그럼 반미라도 먹자 하고, 근처 가게에 갔다. (2개에 1500원)
자전거에 짐을 놔두고 기다리는데, 바로 꺼내 주면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해준다.

그녀를 다시 학교에 데려다주고 외곽지역을 돌아다니다 강변의 허름한 카페에 들어와 맥주를 마신다. 메뉴도 없어서 계산기에 가격을 찍어서 확인한 뒤 마신다. (700원)
포드 suv차를 탄 커플이 들어와 주문한다. 아이폰도 있는 것을 보니 진짜 있는 집 자식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빈부차가 심하다. 베트남 농부는 하루 12시간 일하고 1500원 번다고 한다.

신발가게에 가니, 다른 외국인이 뭔가 불평을 하고 있다. 두꺼운 밑창이 덧대어져 있고, 빼달라는 요지다. 재질도 싸구려인데 35불 줬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자 주인여자가 또 눈짓을 준다. 외국인은 완전 봉이구나.

다른 신발가게에 갔더니, 슬리퍼만 나왔다. 작다. 엄지가 안들어간다. 그런데도 억지로 끼워 주면서 맞다고 우긴다.
/작잖아. 안보여?
/아냐. 맞는거야.
/누가 슬리퍼를 이렇게 딱 맞게 신어. 작다구.
진상기미가 보이자, 다른 외국인들이 쳐다본다. 점원은 얼른 늘려주겠다고 하면서 한시간 뒤에 오라고 한다. 실제 나온 것을 보니,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인민군모자가 마음에 든다. 2불. 5개를 골라 6불에 달라하니 당연히 도리질. 한국가면 만원씩은 하는 모자다. 결국 8불에 받아들고, 슬슬 유람을 다닌다.
하루종일 굶어서 강변에 앉아 바게트를 뜯어 먹으면서도 쇼핑의 수레바퀴는 쉴새없이 돌아간다. (바로 옆에 젊은 연인들이 밀담을 나누고 있다. 신은 베트남인들에게 미남, 미녀의 외모를 준 대신, 신장의 자유를 빼앗았다.)

도장가게 앞에서 길을 멈췄다. 2시간이면 원하는 글자나 문양을 파준다. 5천원. 친구 작업실 로고를 새겨 선물하기로 한다. 한글로 나와야해서 약간 걱정이 되긴 하지만, 샘플들을 보니 대단히 정교하다. 먼저 주문했던 여자가 도장을 놓고, 자꾸 토를 달자, 환불해줄테니 가라고 한다. 성질있다. 이따가 나도 저러면 안되는데.

하루종일 자전거를 탔더니 엉덩이가 아프다. 게다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두운 공사판 천막에 들어가 반미를 뜯어 먹고 있는데,나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사서 개고생을 하는 내가 싫어진다.

다시 신발가게에 들렀다가 아까 그 외국인 남자를 만났다. 결국 밑창을 못 뗀 모양이다. 너 나한테 사기쳤어. 그 만큼 저 여자한테 깍아줘.라고 내뱉고는 횡하니 나가버린다.
/저 남자 화났네?
/아냐. 이해해줬어. 신발이 좀 잘못나왔거든.
/나 깎아주래잖아.
/아냐. 그냥 인사한거야.
이 여자는 같이 들어놓고 왜이래. 대신, 신발은 만족스럽게 나왔다.

다른 신발가게에 들러 신어보니 한결같이 너무 타이트하고 촌스럽다.아까 작다고 했던 샌달은 또 너무 크게 해놨다. 딱 맞는다고 하면 늘어날거라고 하고, 크다고 하면, 아니라고 우긴다, 뭐라 하려고 하면, 피곤해보이니까 호텔가서 쉬란다. 아..이놈의 장사치들.

베트남 상인들은 일단, 돈을 받고 나면 완전 무시한다. 관광객은 많으니, 아니면 말고 식이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인사하는 것이 아니다. 국적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거다. 뭘 살때마다 의심해야 하는 것도 피곤하다. 정가제라고 붙여 놓은 곳도 믿을 수 없다. 믿을 곳은 슈퍼뿐이다. 고로, 베트남에서는 슈퍼를 해야 한다.

도장 가게에 갔다. 우려했던대로 딱 떨어지는 느낌은 아니다. 샘플을 가져갔어야 했는데, 약간 뽑기도장같은 느낌이다.
또다시 무덥고 끈적거리는 밤. 남은 일정은 좋은 숙소에서 자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짐을 싸는데, 배낭이 터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