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의 발견

<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by iamlitmus 2007. 3. 26.
'나는 조용히 죽을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암선고를 받은 전직 보험회사 직원인 주인공은 죽을 곳을 찾아 헤메는 짐승처럼 브루클린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이제는 이름도 입에 올리기 싫은 전부인과의 이혼, 하나밖에 없는 딸과의 불화 등 괴로운 일들도 있지만, 매일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르는 레스토랑의 여종업원을 향한 유치한 설레임 또한 그를 새롭게 한다. 그는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동안 그가 저질렀던 어리석은 일들을 적는 일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많은 어리석음들로 인해 종내는 몇 개의 상자를 더 마련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어느정도 안정을 찾은 그는 여동생의 아들인 톰을 만나게 되고, 촉망받던 젊은이였던 그가 택시운전사를 하고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이후 고서를 취급하는 헌책방에서 일하게 되는 톰을 통해 해리라는 독특한 인물과 조우하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처럼 브루클린에 모여든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교묘하게 주인공과 타인들이 얽혀들게 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톰의 여동생 오로라와 그의 딸 루시, 이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톰의 아내, 종교에 미친 오로라의 남편 등 브루클린은 순식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못지않은 무대로 변한다. 폴 오스터 답지 않은 결말, 즉, 모든 사건들이 종결되고, 모두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는 이 책은 그간 흥미거리로 읽어왔던 기존 그의 작품에 비해 굉장히 완성도가 높은 책이다. 미술이나 문학에 대한 충분한 사전지식이 없었다면 결코 쓸 수 없는 탄탄한 구성과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독특한 묘사, 이젠 자신의 독자를 선택할 수 있는 적당히 어려운 문체 등 폴 오스터의 문학적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