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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사랑이라 쓰고, 개싸움이라 읽는다.

by iamlitmus 2021. 6. 28.

철수는 영희에게 나가서 놀자고 했습니다. 영희는 날씨가 더워서 나가기 싫었지만, 계속 졸라대니 마지못해 일어났습니다. 철수는 왔다갔다 하면서도 나갈 기미가 없어 보이는 영희한테 점점 화가 났습니다. 현관에서 신발끈을 묶느라 한 세월을 보내는 영희를 지켜보던 철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내팽게쳤습니다. 나 안가. 너 혼자 가

씩씩대며 집으로 들어가버리는 철수를 보며 영희도 너무 화가 나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던 영희는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습니다. 이대로 집에 가면 며칠동안 연락없이 지내다가 영희가 연락을 하겠지요. 다툴 때마다 영희가 먼저 말을 걸고, 철수는 봐준다는 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영희는 이기거나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을 때는 행복만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참고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영희는 철수가 좋아하는 치킨집에 들러 포장을 한 뒤 다시 철수 집으로 향했습니다. 기척을 듣고 나온 철수는 삐죽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 갈데가 없구나?

철수는 표현에 서툴렀습니다. 미안한 상황에서도 화를 냈습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영희는 심호흡을 한 뒤 말했습니다. 나 많이 참고 있는 중이거든. 표현에 서투르기는 영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철수는 치킨을 먹으면서도 맛이 별로다. 입맛에 안맞는다며 계속 투덜댔습니다. 영희는 괜찮은데? 난 맛있는데? 대꾸했지만 결국 남겼습니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둘 다 말이 없었습니다. 식당 앞 인형처럼 감정없이 손을 흔들고는 헤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온 영희는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감정을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일이었던가요. 함께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타인과의 거리가 팔 하나 만큼이 적당한 것 처럼 철수와의 거리는 손 한뼘이 될 수도, 도시의 끝과 끝이 될 수도 있는 거였습니다.  

 

철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했습니다. 영희는 이것도 나름 철수만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철수를 만나지 않고, 영희 스스로에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마치 전쟁하느라 피폐해진 농토와 백성들을 보살펴야 하는 영주같은 심정이랄까요.

 

그런데, 왜 기분이 좋아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