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 승무원이 되고 싶었었다. 그 당시에는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때여서 돈도 벌면서 전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승무원은 굉장히 인기있는 직종이었다. 승무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인하대 항공운항과를 졸업하거나 외항사인 경우 서류전형과 면접, 신체검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승무원에 어울리는 외모와 성격도 아니었다. 몇 번 정도는 면접까지 간 적이 있었지만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굳은 얼굴로 어버버 하다가 나온 기억만 남는다.
이후 세월이 흐르고 흘러, 해외여행에 재미가 들려 몇 달에 한번씩 비행기를 타게 되면서 승무원이 정말 힘든 직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백명이나 되는 승객들 밥 줘야지, 술 줘야지, 면세품 팔아야지. 예쁜 유니폼 입고 멋지게 공항을 걸어나가는 멋짐은 한순간인듯 했다. 이후 눈을 돌렸던 것은 파일럿이었다. 운전대가 달린 것이라면 소질이 있으니 비행기 조종 또한 잘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엄청난 훈련비용과 험난한 과정이 있음을 알게 된 후 깨끗하게 포기하고 그저 숙련된 조종사가 몰아주는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어쩌다 파일럿이 된 스토리와 25년동안 하늘을 날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추억들을 모은 책이다. 공군을 거쳐 대한항공, 외항사에 이르기까지 마주쳤던 크루들과 재미있는 경험담, 기장들이 사용하는 테크닉과 조언들에 이르기까지 일반인들은 결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역시 비행기는 남이 몰아주는 게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