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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엄마의 외출

by iamlitmus 2007. 3. 26.
아침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하느라 몹시도 부산스런 엄마였다.
/그러니까 땅꼬엄마가 꼭 와줘야해. 나? 당연히 가지.
/쌀이랑 반찬은 내가 갖고 갈꺼야. 경식엄만 그냥 몸만 와.
/아니..교회를 꼭 가야 쓰겄어? 한번 빠진다고 하나님이 돌아 앉을거래?

달뜬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로 식탁에 앉은 엄마는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듯 보였다.
/엄마..어디 가?
/응. 여행간다. 내가 아주 바뻐 죽겠어.
/아유..이번 연휴때 얼마나 인파가 몰리는데..뭘 거기까지 가서 꽃구경을 해. 여의도도 좋아.

순간, 아차 싶어 황급히 눈치를 살피니, 다행히 귓등으로 흘려 들으신 듯싶다.
/1박2일이니까 아버지 식사 잘 챙겨드려.
나 또한 한귀로 흘려보낸다.


/엄만..좋겠다. 꽃구경두 가구..나두 가구 싶다.
집을 나서기전 무심코 던진 말이 화근이었다.

/너랑 나랑 같냐?
/다를 게 뭐있어?
/진짜 간만에 여행가는 엄마랑 항상 펑펑 놀아제낀 너랑 어떻게 같아?
/......(뜨끔)......
/네가 해놓은게 뭐가 있어. 결혼은 커녕 연애를 제대로 하냐. 그렇다고 혼자 살 돈이나 벌어놨냐. 그러면서 남들처럼 놀거 다 놀고 잘거 다 자고..넌 그러니까 항상..

살금살금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내게 꽂히는 말.
/밥 먹구가!!


/모자 샀어. 어때?
탁한 분홍색 플라스틱 캡이었다. 엄마는 꽃분홍색을 좋아하신다. 하지만  난 그녀로부터 항상 정직해야 한다고 배웠다.
/한여름도 아닌데, 해수욕장에서 쓰는거잖아. 색두 이상해. 딴걸루 바꿔.

미소짓던 엄마의 표정이 흔들렸다.
방금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수만 있다면 천년동안 굴속에서 마늘만 먹으면서 살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사람은 되어서 나올 것 아닌가.

/으..음..엄마는 좀더 밝은 핑크가 어울리잖아. 재질두 천으로 된걸루 바꾸자구. 같이 갈까?
/그러자.  그 가게 옆에 맛있는 국수집 있어. 내가 사줄께.

얼마전 엄마로부터 걸려온 전화내용이 떠올랐다. 백화점 식품매장에 나왔는데 맛있는거 사줄테니 빨리 오라는 거였다. 난 그냥 집으로 간다고 해놓고서는 옷만 갈아입고서 다시 휑하니 나가 버렸었다. 밤늦게 살금거리며 들어와 개수대에 담겨져있는 몇 개의 그릇들을 보자마자  괘씸한 위가 조여들어 숨이 턱 막혔었던 느낌도 되살아났다.

이번주말엔 모든 사람들에게 바쁜 일이 생겨 여행을 취소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피려는 꽃들도, 지려는 꽃들도 꾹꾹 참고 있다가 엄마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일제히 파바박 꽃망울을 터뜨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난 엄마 몰래 윤중로로 꽃구경을 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