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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연극 '명퇴와 노가리'

by iamlitmus 2011. 3. 7.

위치는 혜화역 근처 미스터피자 지하 2층입니다. 소극장보다는 약간 규모가 있는 가,나,다 열로 구분지어 있지만,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아 나열 4-5라인까지 채워진 채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극 제목에서 짐작되는 것처럼 명예퇴직한 가장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는 아내, 백수 아들, 백수예정 딸. 이렇게 구성된 가족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이들 가족 구성원 중 하나라도 포함되기에 관객 누구나 공감대 형성이 쉬울 것 같더군요.

주인공은 명퇴후 전업주부로 전향하여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을 하며 살림을 합니다. 경제권이 없으니 자연히 목소리도 작아지고, 자식들 앞에서도 아버지의 위엄을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어느날, 강도가 들어와 칼을 들이대는데, 주인공은 살기도 싫으니 잘됐다며 한번에 잘 죽여달라는 부탁까지 합니다. 한강에도 뛰어 들어보고, 목도 매달아봤지만 전부 실패했었거든요. 죽는 것 마저도 실패하게 되니, 여태껏 살아왔던 인생 모두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강도라는 사람도 아내에게 기죽어 살기 힘들다며, 차라리 죄를 지어 감옥에 가기 위해서 강도짓에 나선 명퇴자입니다. 이들은 가장으로서의 위신도 세우고, 감옥도 가고, 윈윈전략을 위해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가짜강도연극을 하기로 합니다. 아내는 모진 소리를 하면서도 남편에게 돈 벌어오지 않아도 좋으니, 밤일에 신경을 써달라는, 왜 이렇게 박력이 없냐는, 약간 어이없는 푸념을 합니다. (같이 본 결혼한 친구는 연극을 보고 난 후, 여자들은 정말 그런거냐며 묻더군요. 결혼 안한 제가 어찌 하냐구요. 마누라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인간아.) 

아들은 아들대로 백수친구가 사업을 하자며 꼬드깁니다. 개똥에 약품을 뿌려 없애는 신기술이 있는데, 자본이 없으니, 강도인 척하고 집을 털자는 대담한 계획까지 세우게 되죠. 우연히 이를 엿들은 딸은 나름 갈등을 하게 되구요. 이러다가 갑자기 남편이 아내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며 연극이 끝납니다. (친구가 '이거 끝난거야?'라고 소근거리는데, 저도 '어?어'라고 얼떨결에 대답했어요.)

전체적으로 평을 하자면, 관객들이 극에 몰입하기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리지만, 깨알같은 웃음코드가 곳곳에 박혀 있어 꽤 크게 웃을 수 있는 연극입니다. 특히, 아들 친구역으로 나온 노안배우는 연기가 능수능란합니다. (정말..대사 한마디만 해도 너무 웃겨요.) 아쉬운 점이라면, 이런저런 이슈를 여기저기 던져 놓은 채 허겁지겁 마무리를 한 느낌이 듭니다. (사실, 2/3지점에 이르렀을 때, 도대체 결론을 어떻게 지으려고 이렇게 판을 벌리나.싶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