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이 되면 C사는 전직원이 참가하는 워크샵을 진행한다. 금년에는 여장남자직원들의 과장된 가슴언저리와 그물스타킹으로 흥을 돋구거나, 질펀하게 벌어지는 술판으로 이어졌었던 기존 프로그램과는 달리, 보다 생산적이고 알찬 교육내용으로 채운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출발 당일, 출산이 임박한 직원이 아닌 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털털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서울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피곤에 지친 직원들은 나눠준 김밥 한 줄씩 우겨넣자마자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나들이가는 행락객들이 휴게소에 차고 넘쳤지만, 커텐을 친 버스안의 직원들은 눈도 뜨지 않았다.
충청도 깊은 산속에 위치한 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전 직원은 회의실로 이동했고, 곧바로 팀회의 발표준비에 들어갔다.
/도대체 왜 이런 걸 하는지 모르겠어.
/그러게. 그냥 술마시고, 족구 한판 하고 가면 될텐데. 아. 지겨워.
하기 싫어 죽는 직원들의 웅성거림속에 마이크를 잡은 소심해씨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자, 자, 우선 팀별로 착석해주시구요, 미리 공지한대로 주어진 10개의 의제에 대해 충분한 토론을 거친 뒤, 발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수발표팀에게는 각각 상금이 주어집니다.'
상금내역이 발표되자마자, 전직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진짜 주는거야? 작년처럼 준다고 해놓고 입 싹 닦는거 아냐?
/이번 워크샵은 뭔가 좀 다른 모양이야? 가만있자. 1등하면, 1인당 얼마야..이야..
착한 직원들이 기쁨에 겨워 동시에 떠들기 시작하자, 회의실은 금새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다른 팀의 전략을 염탐하기 위해 기웃대는 직원들도 있었다. 1시간여가 지나 임원들의 손에는 채점표가 쥐어졌고, 발표자를 응시하는 임원들의 표정에 따라 긴장의 끈은 느슨해졌다 바짝 죄어졌다. 적극적인 업무개선 내용보다는 유머에 비중을 둔 팀의 승률이 거의 확실시 되자, 직원들의 얼굴에는 실망의 빛이 번져갔다. 처음보다 약간 용기를 얻은 소심해씨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직원들 모두 수고 하셨구요, 채점 결과는 족구경기와 발야구, 릴레이 경주가 끝난 뒤 발표하겠습니다. 자, 모두 운동장으로 집합해주세요. 운동경기에도 상금이 걸려 있습니다."
다시금 상금이라는 단어에 반항아들은 금새 양몰이에 동원된 순한 양들로 돌변했고 우르르 운동장으로 집결했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족구경기에서 사장이 서브를 넣을 때마다 오들오들 떨며 응원하던 여직원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러댔다. 뒤이어 벌어진 발야구 경기에서도 임원진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분명한 편파 판정시비가 있었지만 기분좋게 상금을 하사한 사장에게 감복한 착한나라 직원들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주변 분간이 분명치 않았음에도 일명, 'K1 릴레이'에서도 이리 엎어지고, 저리 자빠지며, 기꺼이 몸개그를 구현했다. 멀찌감치 떨어진 나무 숲에 쪼그리고 앉아 경기를 관람하던, 몇 몇 아웃사이더들은 어깨를 붙이고 앉아, 냉소적인 웃음을 흘렸다.
/작년에도 저거 하다가 애들 무릎깨나 깨졌지.
/우리도 뛰어야 하는거 아냐?
/됐네요. 어두워서 얼굴도 안보여.
숙소 앞마당은 산자락을 뒤덮은 바베큐 연기로 가득찼고, 장작옆에는 소주와 맥주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로비에 있던 노래방기계까지 끌어다 놓은 간이 무대에서는 구슬픈 섹스폰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하루종일 추위와 배고품에 떨며 철인3종경기까지 치룬 직원들은 고기가 구워지기 무섭게 먹기 시작했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워져 어느 것이 고기이고, 어느 것이 고구마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으나, 착한나라 직원들의 언 뺨에 발그스레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취기가 오른 이가 마이크를 잡기 시작했고, 어둠속에서 하나 둘씩 노래방 화면을 향해 다가서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신입사원 S양은 이 장면을 회상하며 증언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밥만 먹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모두들 일어나서 앞으로 몰려가서는 마구 박수를 치면서 춤을 추는거예요. 저는 회사 직원들이 진짜 숫기가 없는 줄 알았거든요.
셀 수 없이 많은 술병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준비한 음식도 바닥을 드러내자,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 모두들 본관 지하 노래방으로 갑시다아~"
배정된 숙소는 각각의 편리에 맞춰 수면방, 음주방으로 나뉘어 그 기능을 다변화시켰고,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방이 있으면 알아서 어울렸다. 어쨌든, 아침이 되었다. 북어국을 억지로 떠먹고 있는 직원들은 마주 칠때마다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간밤의 영원할 것만 같던 친밀함은 떠오른 햇살아래 증발해버리고, 미세한 느낌만이 남아 있었지만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는 직원들의 얼굴은 산골소년, 소녀마냥 순진했다.
"자, 모두 활짝 웃어주세요. 하나~두울~셋!!"
활.짝.찰.칵.
사건은 이후에 발생했다.
/세상에. 308호에 누가 들어와서 오줌을 쌌대.
/도대체 누구야?
/몰라. 다짜고짜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마구 욕설을 하더니, 벽에다 대고 쉬를 하더래.
/불을 켜서 확인했어야지
/너무 무서워서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었대.
/왠일이니. 정말.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밤사이 여자숙소로 배정된 3층에 출현했던 남자직원들의 리스트가 급히 작성되었고, S씨, K씨, P씨, C씨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여직원 왕고참인 J양은 이들 용의자들을 식당 한켠으로 불러 심문을 시작했다.
/어젯밤, 3층에서 술 마신 적 있죠?
/아..네.
/증언에 따르면,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는데, 그렇다면..
/앗. 그럼 전 아니예요. 전 목소리가 높고 가늘거든요.
C씨가 슬쩍 한켠으로 물러났다.
/전 잠깐 올라왔다가 다시 2층으로 내려갔어요. 본 사람도 있다니깐요.
K씨도 슬며시 물러났다.
/자. 그럼, K씨와 P씨만 남았는데. 누가 오줌을 싼거야? DNA 검사해봐?
일명, '노상방뇨사건'은 술에 취한 L씨가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과 지하 노래방에서 누군가에게 밀려 넘어진 H양의 인대가 끊어져 2달동안 목발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사건에 밀려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왕고참 J양의 날카로운 시선은 항상 K시와 P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다음날 메마른 얼굴로 출근을 한 직원들은 1년만의 운동으로 놀란 뱃가죽과 허벅지 근육의 고통을 호소했고, 하루종일 파스 냄새가 사무실 내에 진동했다.
그 어느때보다 화합의 정신이 충만했던 워크샵이라 믿고 있는 사장은 감동적인 사연을 적어 전직원에게 보냈다.
"즐거운 야유회였습니다. 해가 갈수록 더욱 멋진 사람들과 멋진 회사로 탈바꿈해나갔으면 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익숙치 못한탓에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마음을 진심으로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왕에 만났으니, 우리 함께 밝은 미래를 만들어갑시다. 사랑을 바탕으로~"
생활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