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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이유

by iamlitmus 2007. 9. 30.

'맨날 우리가 서울에 갔었으니까, 오늘은 네가 분당으로 와라.'
지하철을 타고 가면, 2시간 거리지만, 차를 타고 오면 1시간 이내라고 했다.

운전경력 15년째.
인간 네비게이션이라 불리울 정도로 길눈이 밝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헤매고 말았다.
청담대교를 넘어서부터 휙휙 지나가는 성남, 분당 표지판을 보면서 도대체 어디로 빠져나가야 하는지, 야탑역으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거다. 왼쪽에 아름마을이 있고, 오른쪽에 건설현장이 있는 곳에서 지하터널로 빠지지 말고, 좌회전을 하라고 했지만, 비가 흩뿌리고 있는데다, 고속도로인지라 속도에 맞게 표지판을 볼 겨를이 없었다.
친구는 '성남터미널'로 오라고 외쳐댔지만, 내가 거기가 어딘지 알게 뭔가. 난 강남과 강변 고속터미널밖에 모른단 말이다. 보통때라면 낯선 곳에 가기에 앞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 뒤 지도를 출력했겠지만, '분당은 신도시여서 구획이 딱 떨어진다구. 우회전, 좌회전하면 다 나와'라고 개뻥치신 친구 말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차를 세우고 행인에게 길을 물어 간신히 야탑역에 도착. '다시 유턴해서 뉴코아 아울렛쪽으로 오면, 택시 승강장..' 어쩌구 하는 소리를 들으니, 그냥 차를 돌려 서울로 직행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밀어올랐다. 순식간에 6차선을 가로질러 유턴을 하고, CGV를 지나 뉴코아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는데, '거기가 아니라, 오른쪽으로 들어오면..'이라는 코멘트에, 결국, '네가 와, 이 자식아!!!'라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신도시 유흥가스러운 오색네온사인이 천박하게 넘실대고, 여대생 마사지를 비롯하야 각종 마사지 풍선이 두둥실 떠다니는 분당시내 한가운데 서 있자니, 참으로 내가 한심스럽다. 사람많고, 시끄러운 것을 끔찍해 하는 내가, 길바닥에 휘발유를 뿌려대며 기를 쓰고 찾아 온 곳이 여기였다. 일산, 분당은 여자들의 천국이라 들었는데, 이 동네는 남자들의 오아시스쯤 되는 곳인듯 한다. 취해서 휘청거리는 일행에게 컨디션을 사먹이고 집에 가려는데, 한 인간이 차 문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자기통제가 안되는 인간 유형이다.

'다시 안볼 인간 리스트'에 올려놓고서, 냉정하게 뿌리친 뒤, 출발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런 젠장. 엉뚱하게 성남쪽으로 빠지고 말았다. 어쨌거나 '서울'이라는 표지판만 노려보며,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결론은,
네비게이션을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