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오빠네 회사 대표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본가는 대전이지만 식은 서울에서 진행하는 터라 안 가볼 수 없다고 했다. 집에 있겠다고 했지만 미대오빠는 무조건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내가 왜 남의 회사 경조사에 가야 하는지 물으니 나 혼자 집에 남아 뒹굴거리는 꼴이 보기 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소에도 무기력하지만 주말이 되면 그 정도가 몇 배 심해져서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봐왔던 그는 그 동안 참아온 울분을 토해냈다. 오케이. 좋아. 대신 난 결혼식 음식을 좋아하니 혼자서라도 먹겠다는 것으로 딜 성공.
남산 자락 근처 조그만 웨딩홀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만 7개의 예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랑이 꽃피는 시즌이구나. 예식을 보여주는 TV 바로 앞에 앉아 잘 차려진 부페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단짠+조미료 음식이 적당히 버무려진 전형적인 맛이다. 요즘은 주례를 하지 않고 성혼선언문 이런 거만 하나보다. 시어머니가 나와서 뭘 또 읽네. 친정엄마는 왜 안하지. 화면에서는 신랑신부 주위를 돌며 쉴 새없이 찍어대는 카메라맨과 비디오맨들만 보인다. 수시로 조명이 꺼졌다 켜지며 헬퍼가 드레스를 매만졌다. 이런 포즈로 찍고, 저런 포즈로 찍고. 결혼식이 아니라 앨범촬영을 하는 것 같다. 축하를 해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앞에 두고(지방에서 버스 2대로 올라온 사람들도 있는데) 뭐 하는 행동인가.
인사만 하고 나온 미대오빠는 회사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다며 근처 커피숍으로 도망쳤다. 외국인들로 넘쳐나는 명동 인파를 헤치고 나와 잔뜩 지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습도가 높아 무더웠고 에너지는 바닥이었다. 둘 다 예민했고 말끝마다 가시가 돋혀 있었으며 급기야 말다툼을 했다. 연애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싸울 일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서먹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느슨했던 감정을 바짝 조여 긴장감을 갖게 된 건 좋은거 같고.
이런 부딪힘이 있을 때마다 미대오빠는 헤어짐을 말하는데, 정말 그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웃긴건 그러자고 하면 너는 어쩜 그렇게 쉽게 헤어질 수 있냐고 화를 낸다.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데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난 T다.) 그가 싫어하는 일을 몰래 하다 들킨 터라 난 할말이 없는 입장이어서 그런건데. 다시는 안하겠다고 해도 안믿을거면서. 피곤한 성격이다. 합정동에서 길음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계약만료까지 105일 남았다. 그 때도 프로젝트 비수기가 예상되지만 일단 마음먹은 기한은 올해까지다. 출근할 때마다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싫다. 이곳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둘째 조카가 집에 왔다. 몇 년만에 본 듯. 오빠네 집에 갈 때마다 자고 있거나 외출을 해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벌써 27살이라니. 엄마는 동네 아줌마가 중매를 부탁해왔다며 조카에게 만나보라고 했다. 결혼만 하면 집과 자동차를 사준다고 했다 한다.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다. 반백년을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 이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긍정, 긍정, 긍정적인 생각.
남의 일에 신경쓰지 말자.
물건 새로 사지 않기.
1년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 버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