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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할아버지 생신 이야기

by iamlitmus 2008. 10. 12.

오늘은 할아버지의 70세 생신입니다. 오빠와 나는 용돈을 모아 과일바구니를 선물했습니다. 원래는 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그냥 가족끼리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나는 엄마한테 할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will을 선물하자고 했지만, 엄마는 웃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도 하고, 할머니도 하고, 가끔, 아주 가끔 나도 하면 좋을텐데.
시내에 있는 뷔페에 가는데 길눈 어두운 아빠가 또 길을 헤매는 바람에, 엄마랑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네비게이션은 왜 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종로바닥을 2바퀴 돌고 난 뒤에야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뷔페니까 음식이 많은 건 당연하겠지만, 하옇튼 엄청 많은 종류의 음식이 있었습니다. 1인당 1장씩 전복교환권도 줬습니다. 오빠랑 나는 어린애라고 안줬습니다. 치사합니다. 고모는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을 유심히 보더니 '아르헨티나산이네. 한번 먹어보지 뭐'라며 시원스레 병을 땄습니다. 다른 식구들은 안마시고, 고모만 거의 혼자 다 마시더니 혼자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조금 창피했습니다.

배가 터질때까지 먹고 나서 다들 졸린 표정으로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모가 아끼는 카메라인데 어느 순간 우리집에 있었습니다. 비싼게 잘 나오는구나.라고 아빠도, 엄마도 좋아합니다. 내가 만지작거릴 때마다 고모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느껴집니다. 고모 얼굴은 더 빨개졌습니다. 계속 창피합니다.

갑자기, 고모가 빵이랑 케잌을 잔뜩 가져오더니 봉지에 담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이러면 그거 얼마나 한다고.라며 엄청 화를 내기 때문에 엄마는 그냥 모른척 하고 있습니다. 고모는 이런 것이 다 생활의 지혜라며, 내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더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럴 때보면 고모가 아빠보다 센 것 같습니다. 슬쩍 아빠 눈치를 보다가 몇 개 담아왔습니다. 할머니도 고모가 자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모가 결혼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고모의 눈꼬리가 확 치켜올라가고 말았습니다. 고모가 사도로 변신하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엄마가 황급히 수습을 했습니다. 역시 고모가 제일 센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집에 돌아와서 모두들 쉬고 있는데, 고모는 힙합스타일로 옷을 갈아입더니 '만나자고 조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피곤해'라는 믿기지 않는 말을 하면서 나갔습니다. 아직도 술냄새가 나는데, 누가 만나주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래도, 오늘 고모가 챙겨준 초코렛케잌이 엄청 많아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