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2084

엄마엄마 내 앞엔 수북히 담긴 밥이 놓여졌다. 건너편의 엄마그릇엔 무생채와 고추장을 버무린 비빔밥이 한창이다. 한숟갈 권하는 엄마의 눈짓에 가볍게 도리질친다. 눈 뜬지 한시간정도는 지나야 제대로 된 생체리듬이 되살아나는 탓에 내 얼굴은 잔뜩 굳어진 채다. 결국 밥그릇에 물을 부은뒤 후루룩 들이마시고 만다. 이렇게라도 먹어두지 않으면 늦은 오후즈음 어질함을 느껴야 한다. 이상하게 학교식당밥은 일주일만 먹으면 물린다. 빵은 씹자마자 소화되어 버리기때문에 먹는 수고로움을 허사로 만든다. /부침개 데워놨다. 가져가. /뜨겁잖아. 됐어. /일부러 너 먹으라고 한거야. 아빠도 안주고. 아빠의 원망스런 눈초리가 떠오른다. 엄마는 아침방송에서 본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듯한데 몸과 마음이 분주한 나로서는 한귀로 흘려 들을뿐.. 2007. 3. 26.
저 여자 안좋아하는데요 친구들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보여줄때마다 가장 두려워하는 이는 바로 나다. 그들이 잊고 싶어하는 기억을 주르르 꿰어 차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 여자 안 좋아하는데요. 라고 말하면 십중십십 눈을 크게 뜬다. 아니,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것이 더 웃긴 일일진데, 왜들 그리 진기해하는지 모르겠다.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동성도 선호하는 타입이 있게 마련이다. 난 강인한 여자를 좋아한다. 어렸을때는 화장실갈때 왜 손을 꼭 부여잡고 같이 가야 하는지를 (심지어는 같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해할수 없었다. 혼자서 영화를 본다거나 지나가다 식당에 들어가 1인분을 주문하는 것은 있을수도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여자는 일단 제외. 툭하면 쓰러지거나, 쥐나 .. 2007. 3. 26.
짦은 외출 동네에 대형 갈비집이 오픈했다. 지상 4층의 휘황찬란한 조명에 명가임을 알리는 대형간판, 쉴새없이 드나드는 자동차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오픈 기념으로 갈비탕이 3천원이라더라. /그래? 그럼 식구끼리 가지뭐. 일찍 들어올께.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날이 훤할때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던 탓에 중간에서 내려 교보문고에 들렀다. 한참동안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책을 보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외식한다고 했잖아. 왜 안와? 지나가듯 말하는 엄마에게 나또한 가벼운 지청구를 했을 뿐인데 당신은 하루종일 고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응? 아..지금 들어가는 중이야. 조금만 기다려. /난 점심때 결혼식 갔다와서 배부르니까 너랑 아빠랑 둘이서만 갔다와. /에이..엄마 안가면 나도 안가. 아빠.. 2007. 3. 26.
환상특급 재밌는 이야기 해줄까요? 365일 상습 불면증에다 건망증 최상급인 여자애 이야기. 그녀는 오늘, 최근 한학기 동안 피땀흘려 만든 강의노트를 잊어먹었어요. 국문과, 일본어학과, 영문과 수업내용이 들어있죠. 아시죠? 인문학부 수업은 필기를 제압하는자가 A+ 받는다는거. 금요일 오후까지의 기억이 마지막이었죠. 그녀는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자료구조 필기자료와 프린트물을 통째로 잊어먹기도 했어요. 가뜩이나 못하는 과목주제에 새로 전부 만들어 공부를 했으니 대충 짐작이 가죠? 오늘 아침엔 과후배가 다가와 웬 강의프린트를 내밀더래요. 가만히 보니 자기 이름이 써있는거야. 어디서 났냐고 물으니 화장실 선반에 곱게 놓여 있더래요. 어젯밤 도서관에서 나와 옆에 잠시 두고 손 씻은 뒤 그냥 간거지. 집에 돌아와 다시 강.. 2007.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