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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비가 쏟아져 내린다

by iamlitmus 2023. 8. 10.

사람 마음이란게 참으로 간사한 것이 어제보다 2-3도 시원해졌다고 이렇게 삶의 질이 올라가나. 여전히 미대오빠의 코고는 소리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지만 아침 저녁으로만 시원해지면 각자 방에서 잘 수 있을테니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9시만 되면 꿈나라로 떠나버리는 미대오빠 덕분에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게 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대오빠는 면역력이 약한 편이다.(24시간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코로나도 늦게 걸린 것임) 그로 인해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때문에 힘들어하는데, 예를 들면 저녁만 되면 온몸에 빨간 반점이 올라온다던지, 엉치뼈가 너무 아파서 밤새 몸부림친다던지, 갑자기 토한다던지 한다. 최근에는 팔목에 메추리알 만한 혹이 생겼다. 의사마다 벌레에 물렸거나 바이러스 감염 같은 추측성 진단만 하는 와중에 지금은 점점 줄어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사람에 대한 공포와 낯가림이 심하다. 맨날 입에 달고 사는 '싫어'는 겁이 난다는 다른 표현이다. 새로운 시도나 도전은 없다. 항상 안전한 선택을 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 그와 만날 수 있다. (그나마도 전화나 카톡, 문자로만) 그런 그와 9년 넘게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어제도 점심먹은 뒤 토했다고 한다. 저녁에도 토하고. 병원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후유증이라고 짐작한다. 죽이나 스프라도 먹어서 기운을 차려야 하는데 도리질만 친다. 코로나 병수발이 끝났나 했더니 또 다른 수발 시작이다. 엄마 밥 먹고 오라고 해도 '싫어'. 퇴근 때 죽집에 들르기로 했다.

 

어제 PM과 돼지 퇴사 관련 면담을 했다. 다음 주에 새로운 인력이 오면 인수인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한다. 한번은 붙잡았으나 퇴사 의지가 견고하여 더 이상은 잡지 않았다고 한다. PM은 돼지가 업무 관련 히스토리를 많이 알고는 있긴 하지만 퇴사 후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맘편한 소리를) 한다. 당분간은 업무를 함께 봐달라고 하니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자기도 아는게 없어서 도움이 되겠냐고 반문한다. 

 

/안되면 깨지면 되죠. 그게 그리 큰 문제가 되겠어요?

그래. 말은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당하는게 나니까 문제지. 

 

요즘 입안이 다 헐고 잇몸까지 흔들리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 돼지가 나가고 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도시락 싸오는 것도 귀찮아서 출근길에 김밥을 사서 먹기 시작한지 꽤 됐다. 5분만에 다 먹고 양치하고 자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렇게 아무런 의욕도 없이 돈만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맞는건가. 이렇게 올해를 보내고 내년도 똑같이 하면 되는건가. 

 

결혼 30주년을 맞이하는 오빠와 올케는 9월에 스위스 여행을 가기로 했다. 평생 외벌이를 했던 오빠를 위해 2년째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올케가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전부 부담하기로 했다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스토리란 말인가. 대표적인 K장녀인 올케는 양가 부모님과 동생네 식구들, 자식 둘과 남편까지 챙겨 가면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P여서 I인 나와는 결이 맞지 않지만(누군들 맞겠는가) 인간 그 자체로 보면 대단한 사람이다. 

 

급여가 들어왔다. 지난 달부터 출근했지만  3일이 월요일이어서 2일치를 제한 금액이다. 금융치료를 하니 다니기 싫었던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된다.  태풍으로 인해 조기퇴근(16:30) 공지가 내려왔다. 이래서 대기업이 좋다고 그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