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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뭔가 이상한데

by iamlitmus 2023. 8. 7.

꼬꼬마 사원이 1주일동안 휴가를 냈다. 그동안 돼지와 단 둘이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돼지는 여전히 내게 말을 걸지도 업무를 맡기지도 않고 있다. (이 사람 은근히 뚝심이 있다. 필요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부서에서도 휴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지만 난 출근 기간이 짧아 월차 이외에는 쉴 수 없다. 집에 있어봐야 쪄죽으니 시원한 사무실에 있는 것이 더 나은지라 큰 불만은 없다. (똥밭에 굴러도 집에서 구르는게 낫다는 이론은 날씨가 시원할 때나 이야기지.) 태풍이 90도로 방향을 틀어 북상하는 이번 주만 지나면 행복 시작이다. 밤마다 끈적임에 못이겨 눈을 뜨는 괴로움도 이젠 끝이다.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어제도 더웠다. 꼼짝도 하기 싫은데 미대오빠가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다며 마트에 가자고 했다. 내가 어딘가 가자고 하면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정말 싫었지만 그대가 원하니 가줘야지. 신호대기선에 서 있는데 오늘 휴무일 아냐? 묻는다. 순간, 미리 체크하지 않은 그에게 짜증이 나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는 너도 확인을 안했으면서 왜 한숨을 쉬냐며 화를 냈다. 그는 결코 사과를 하지 않는다. 무조건 내 탓을 한다. 날씨가 더운 것도, 정치가 어지러운 것도, 도심 곳곳에서 칼부림이 나는 것도 다 내 탓으로 돌린다. 말도 안되는 행동임을 알면서도 일단 그렇게 한다. 일일히 대응하면 똑같이 유치해지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래서 부부가 점점 대화가 없어지는 것이다. 왜 다 받아주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또한 내 행동에 힘들어하고 감수하는 부분이 있다 생각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한다. 
 
장을 보고 나서 스타벅스에 가서 땀을 식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저 시원하다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수긍이 됐다. 1인 1음료가 아니면 케잌을 주문했을 때 여분의 포크를 주지 않는다는 핫플 카페 직원의 에피소드를 읽고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대오빠는 그냥 추가로 음료 주문을 했을 것이다. 나같으면...정말 많은 선택지가 나오는데, 곤조를 부리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 사람들이 쉽게 화를 내는 이유는 일단, 덥고, 둘째도 더워서이다. 이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지.라는 역지사지 모드가 되기 어렵다. 나를 호구로 보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폭주하는 것이다. 미대오빠와 나는 최대한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것에 뜻을 같이 한다. (즉, 사람이 모이는 곳에 아예 가지 말자.) 엄마는 항상 내가 밖에 나가서 쌈박질을 하고 다닐까봐 걱정한다.  무조건 네가 참으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왜 저러나 싶었지만 지금은 이해가 된다. 
 
미대오빠의 매형 회사에서 하얏트 숙박권이 나와 부모님이 호캉스를 가신다고 했다. 남친네 가족들은 정말 효심이 지극하고 화목하다. 그런 점 때문에 미대오빠와 사귄 것도 있다. 가정환경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 문제는 나를 그 범주안에 들여보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은 하지 말고 연애만 했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의견을 듣고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한다. 부모라면 끔찍하게 생각하는 아들과 남동생이 여자때문에 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 내가 그 안에 고스란히 동화되어 효부가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천년의 사랑도 아니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지고 고민하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제발 집에 좀 가라는데 아직도 갈 생각이 없는 미대오빠 되시겠다. 
 
눈썹 문신을 했다. 일단 결심하면 실행속도가 빠른지라 가장 더운 날 예약을 하게 됐다. 사장님은 손님한테 2번,  친구들과 놀다가 2번해서 총 4번이나 코로나에 걸렸다고 한다. 남자들도 눈썹 문신을 하러 온다는데 아파트 상가 지하 구석에 있는 매장에서 단 둘이 있으면 무서울 것 같다. (사장님이 엄청 예쁨) 기존에 사용하던 마취제가 수입이 제한되어 마취효과가 적은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시술 시 아플 수도 있다고 했다. 아프기는 했지만 악.소리를 지를 정도는 아니어서 꾹 참고 있는데 '정말 잘 참으시네요'라며 감탄한다. 예상할 수 있는 고통은 참을 수 있다. 앵그리버드 눈썹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미대오빠가 오랜만에 크게 웃는다. 앞머리를 다 내린 채로 출근했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다.(알면서도 말하지 않는지도)
 
엄마가 다니는 복지관에서 스마트폰 사용법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데 본인 명의가 아니면 신청할 수 없다고 한다. 부모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은 대부분 자식들의 명의로 개통이 될 텐데 그런 이유가 있다는 것에 잠깐 의문이 들었다가 잊어버렸는데 오전에 다시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교육을 너무 듣고 싶은데 복지관에 전화해서 물어봐달라고 했다. 엄마가 이 정도로 말한다는건 정말 하고 싶다는 의미다. 자식들이 가르쳐준다고는 하나 그 순간만 기억할 뿐 금새 까먹어버리니 또 물어보기도 민망하셨겠지. 복지관 직원과 통화하는데 휴대폰 명의와는 상관없이 등록 가능하다고 한다. 유선상으로는 신청 불가능하고 직접 방문해서 신청하면 된다는데 도대체 누가 안된다고 한거지. 이런 전화를 많이 받아본 듯한 직원은 자신들은 절대 안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재빨리 말했다. 폴더폰을 사용하셨던 엄마에게 스마트폰으로 바꿔줄까 물었을 때 필요없다고만 하셨었는데 실은 굉장히 갖고 싶어 하셨던 거였다. 어른들에게 고기능 휴대폰이 과연 필요할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사드리면 된다는 미대오빠의 철학에 동감한다. 

부모님이 가장 많이 하는 대화는 날씨였다. 추위에는 워낙 강한 가족인지라(엄마가 열이 많아 한 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산 덕분에 겨울은 그저 사계절 중 가장 살기좋은 때다.) 영하 십 몇도라고 해도 시원해서 너무 좋다.로 끝나지만 더위는 공포 그 자체였다. 밖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더우면 좀 어때.라고 틱틱거리던 내가 인스타니, 유투브니 그런 앱보다도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건 날씨가 되었다. 땀을 비오듯이 흘리는 탓에 봄부터 여름을 걱정했고 여름이 되면 정신을 못차렸다. 처서 날짜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 날만 목을 빼고 기다린다. 처서가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오는데, 아...드디어 원수같은 여름이 떠날 준비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구 행복해진다.  처서까지 2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