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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불발

by iamlitmus 2015. 6. 10.

견인불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맞아도 참고 견디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 비슷한 표현으로 견인지종(堅忍至終).

끝까지 굳세게 참아 내어 목표를 달성한다는 뜻.

 

7년 전쯤 송탄이라는 지방도시에서 1년정도를 보낸 적이 있다. 지인의 일을 도와주면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독립생활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엄청난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먼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지방도시만이 가진 특이한 문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동네친구와 결혼을 하고, 가게를 차리고, 여기가서 팔아주고, 저기가서 먹어주는 상생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었기에 사생활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름 이웃간의 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누구와 손만 잡고 걸어가도 금새 소문이 돌고 쑥덕거리는, 질낮은 관심질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미군부대를 쳐다보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이들이 대부분인지라 굉장히 친미적이고 소비적인 생활방식을 갖고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비행장을 닦는 일을 해도 달러로 월급을 받는데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한 집 건너 모텔이 동네를 채우고 있고, 티켓다방 스쿠터가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극장은 커녕 서점 하나 없는 그야말로 정직한 향락도시였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놀러다니고. 사람들의 머릿 속에는 그것들 뿐 인 것 처럼 보였다. 도시에서 누렸던 무조건적인 서비스는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오면 오는거고, 가면 가는거였다. 하루종일 인터넷쇼핑만 하는 직원들은 잡지 조차도 읽지 않았다. 대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고 그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마음에 병이 들자 몸도 그에 맞춰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먹는 음식도 부실하니 모든 일에 의욕도 없고, 누워만 있고 싶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지옥바닥까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자 술을 마시게 되고, 그도 부족하다 싶으니 수면제를 처방받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나를 있게한 내 자신이 너무나 저주스러웠다. 자존감 따위는 사리진지 오래였다. 우울증이었다.

 

지인은 계약한 1년을 채우지 않으면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생각 해보면 당시 나도 너무 순진했던 것이 그 인간이 그러던지 말던지 서울로 올라왔어야 했다. 나중에 서울로 올라온 후 지인과의 연락은 당연히 끊어졌고,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일이나 좋지 않은 기억이 맴돌때마다 송탄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그때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껌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제 집을 나섰다가 불현 듯 송탄으로 향하게 된 것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흑역사 무대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7년이나 지났으니 많이 발전했을까. 이제 도시 냄새 좀 나나.

 

송탄역을 나섰을 때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의 긴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메르스의 영향도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문을 연 상점들은 거의 없고 편의점 정도만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 도시 전체가 멈춰 있었다. 죽어 있었다. 내가 이런 곳에서 있었구나. 계속 살았다면 이런 모습을 평생 보면서 살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벗어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워졌다.

 

내가 살던 원룸 근처는 모텔들이 더 늘어나 있었다. 원룸의 창문과 현관 사진을 찍었다. 마음이 흐트러질때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다잡고 싶었다. 이런 곳에서 살았었다. 내가. 그런데, 지금 불만을 갖고, 늘어지면 안되는거지. 사람이라면.

 

시외버스를 타고 잠실역에서 내렸다. 바벨탑같은 롯데월드몰을 올려다보며, 40분 전에 머물렀었던 송탄을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