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의 발견

<달의 제단> 심윤경

by iamlitmus 2007. 3. 26.

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했던 심윤경은 2년뒤, 보다 진중해진 주제와 인물들을 데려왔다. 전편이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1년에 제사를 20번도 더 치뤄내는 종가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3살때 대를 잇는 종손으로 들어온 상룡은 서자 출신이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괴감과 몰락한 일가를 부흥시키기 위해 전 일생을 바친 할아버지와의 충돌로 인해 어둡고 불안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제대후 절을 올리는 상룡에게 할아버지는 선산의 봉분을 정리하던 중 발견된 몇개의 서간문을 주며 현대문으로 해석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가 친정할머니와 주고받은 이 편지들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보다 탄탄한 종가의 위용을 세울수 있으리라는 것이 할아버지의 생각이었다.

옛 서간문의 아름다운 문체와는 달리,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참혹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다. 집안에 사람을 잘못 들여 종손들이 죽어 나간다는 미신과 철저한 남존여비사상으로 인해 밟혀죽은 자식을 끌어안고 자결해야만 했던 여인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 와중에 상룡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달시룻댁의 딸 정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비대한 몸집과 모자라도 한참이나 모자란 정신박약아인 정실은 단순히 데리고 놀 심산이었던 상룡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존재로 자리잡게 된다. (상룡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정실이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져내려 출근길 전철에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쇠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종가집의 몰락을 그린 이 작품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오는 동안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몹시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머스러운 상황을 연출해내는 작가의 엉뚱함에 순식간에 읽어 버린 작품이다. 인물의 심리와 행동묘사에 있어서 세심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를 쓰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