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껍질처럼 주름진 얼굴의 노모, 시어머니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나가는 형수는 동굴같은 방에서 하루종일 박쥐색 우산살을 끼우며 죽.지.못.해 살아 가고 있다. 그나마 낙이라면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나훈아의 간드러진 목소리 정도.
주인공은 이런 현실을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받아 들이지도 않은 엉거주춤 인생모드를 갖춘 백수건달이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낙은 동창생 윤희가 일하는 '당나귀'에 들러 달콤한 팝콘에 생맥주를 들이키는 것이다. 어린시절 윤희는 자신을 토닥이며 재워주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철저하게 현실적인 여자로 바뀌어 그에게 '남창'이라는 직업을 제안하기까지 한다. 불쌍하게 생긴 외모가 어쩌면 여성들에게 모성애를 불러 일으킬 지 모른다는 조언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결국, 그는 역전에서 만난 여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게 된다. 그가 역전을 택한 이유는 항상 탈출을 꿈꿔왔던 그에게 안성맞춤이었고, 또한 같은 이유로 그곳을 찾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관방에만 들어서면 180도 돌변하여 괴성을 질러대는 여자, 비구니가 되기 위해 절에 가는 데 동행해 주길 원하는 여자, 심지어 자전거 타는 법 가르쳐 달라는 여자, 그의 몸을 얼음속에 넣었다가 인간 냉장고로 써먹는 자연주의자 여자등 그가 매춘이라는 직업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여자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의 인생이 눈에 띄게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아마도 영원히 변할 일은 없을 것이다. 눈물이 땟물이 되버리는 현실은 평생 그를 휘감아쳐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의 주위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밝게 자란 모습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기로 했다는 윤희의 말에 자신도 밝게 자랐다고, 아니, 밝게 자랄수도 있었다고 고쳐 말하던 그는 예전에 그랬듯이 윤희의 무릎위에서 잠이 든다. 소로록 불어오는 바람, 생각난듯 들려오는 새울음소리, 이 순간만은 모든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다. 단지, 눈만 감으면 된다.
여성스러운 문체와 조곤거리듯 짜여진 구성으로 인해 무난하고 덤덤하게 다가서고는 있지만 무게감은 심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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