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뼈 마디마디가 쑤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새벽 6시만 되면 눈이 떠집니다. 서울시간으로 낮 12시. 평소같으면 실컷 자고 일어나는 시간. 만병통치약 판피린 한병 마셔주시고, 바티칸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메트로(1유로=1,400원)를 타기 위해 떼르미니역으로 갔는데, 어마어마한 출근 인파라니. 월요일 구로역을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입구에 맞춰 서지 않는 열차를 따라 수백명의 인파가 우르르 쏠립니다. 첫차는 별 수없이 보내고, 두번째 차는 기를 쓰고 올라탔습니다.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카메라와 가방을 꽉 움켜쥐고, 노선표만 노려봤습니다. 바티칸 역에 도착해서 단체관광 온 이들을 따라가니, 바티칸 박물관 성벽을 따라 길게 줄이 서 있습니다. 성수기때는 몇 시간동안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한 20분정도 지나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입장료 8유로-학생, 저 국제학생증 있어요.) 볼만하기는 한데, 나중에는 그 그림이 그거같고. 무식이 죄죠.어쨌든 박물관 입장료로 먹고 살만 하겠어요.(하루 입장료 수입이 3억이라는군요.)
박물관을 나와 뭔 광장을 지나, 뭔 성을 지나 뭔 다리(하도 많으니 이름 못 외워요.)를 지나 다시 스페인광장으로 걸어 왔습니다. 비는 주룩주룩, 세찬 바람에, 우산은 뒤집어지고, 피로는 점점 쌓여가고. 아. 이러다가 이틀만에 쓰러지겠다 싶더라구요. 다시 메트로를 잡아타고 숙소로 가서 잠시 쉬었다가 나폴리를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그 전에, 목도리 잊어먹은 것을 신고하기 위해 (흐흑. 내 버버리~~) 떼르미니역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워낙 역이 크다 보니, 진짜 찾기 힘들어요. 숙소가 26번 승차장 근처였는데, 1번까지 거슬러 올라가 다시 한참을 헤메야 했어요. 코딱지만한 방에 들어가니 여러 명이 모여 앉아 있는데, 표정들이 슬프기 그지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상식.
여행을 가기 전에 공항에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시면, 분실시 한품목당 20만원씩, 최고 40만원까지 보상 가능합니다. 대신, 해당 나라에서 폴리스 리포트라는 서류를 발급받아야 해요.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애들은 좀 전에 소매치기를 당했대요. 분명,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있었는데, 감쪽같이 가져갔다고 합니다. 창구로 가서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니,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고객 서비스 끝내준다.
투덜대던 그녀들이지만 제게는 위로 해줍니다.
/로마에 온 것을 환영해~~
/너희 얼마동안 기다렸어?
/한 시간.
/창구 안에 있는 애들은 웃으면서 놀고 있는데?
/어. 그러게.
/번호표같은 거 없어?
/전혀.
꾸벅대며 1시간여를 기다렸나,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무슨 서류를 주더니 적으라고 하대요. 언제, 어디서, 어떤 물건을, 어떻게 잊어버렸는지 자세히 쓰라고 합니다. 이왕 보험료 탈 것이라면, 확실하게 해야지 싶어, 아침에 메트로역에서 카메라와 캠코더를 소매치기 당했다. 어쩌구 저쩌구 대충 적었습니다. 그러더니 여권과 서류 카피하고, 도장 꽝 찍어주고 가라고 합디다. 아니 이것들이. 그럼 미리 서류 나눠주고 작성하라고 하면, 훨씬 시간이 절약될텐데, 1시간에 1명씩 처리하고, 월급받는다 이거지. 사실, 경찰뿐만 아니라, 박물관 직원들, 메트로 직원들 일하는 모양새를 보면, 웃고, 떠들고, 담배피우는 것이 업무처럼 보입니다.
어쨌든, 티켓팅을 하기 위해 매표소로 가서 미리 예약한 유레일패스를 내밀었습니다. 유로스타는 좌석예약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배낭팀 직원 말로는 한꺼번에 예약할 경우, 한 번만 내면 된다고 했거든요.(15유로) 그런데, 20유로를 내래요. 어쨌든 냈습니다. 올랐나보다 했죠.
/근데, 다른 도시로 가는 것도 같이 예약해줘.
/그건 안돼. 그 도시가서 해.
/그럼 예약할 때마다 20유로씩 내라구?
/어.
/한번에 다 할 수 있다고 하던데.
/아냐.
이상타. 이상타. 물음표를 잔뜩 안고서 나폴리 열차를 탔습니다. 요즘 유럽은 4시경이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도착한 6시경에는 아주 깜깜하더라구요. 나폴리는 분위기 험악하기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로마와는 달리 굉장히 어둡고, 낡은 느낌이 강해요. 분위기 수상한 유색인들도 무척 많구요. 그러던지 말던지, 유레일 안내창구로 가서 다시 물어봤더니, 로마 직원이랑 똑같은 소리를 합니다. 아휴. 뭐냐.
민박집으로 향하는 길은 완전 할렘가 수준입니다. 골목마다 서성거리는 이들의 굳은 표정 못지 않게 제 표정도 살벌했는지, 여전히 아무일도 없는 상황입니다. 8인실 도미토리에는 저 혼자만 예약되어 있어 편하게 생겼습니다. 욕실이 따로 있는 것은 좋은데, 좀 추워요. 장판을 켜고, 이불을 두 개 덮었는데도 춥네요. 추위 안타는 내가 추울 정도면 다른 이들은 까무러칠거예요. 저녁메뉴는 파스타. 아. 밥 먹고 싶은데. 점점 맘에 안드네.
내일 아침 일찍 아말피와 소렌토, 포지타노에 가려면 시타버스라는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데, 반드시 티켓을 미리 끊어야 한다고 합니다. 정류장은 아는데, 매표소는 모르겠다며, 숙박집 주인이 동네 한바퀴 돌면서 미리 사오라고 하길래, 그럼 한번 둘러나 볼까 싶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 여전히 살벌해요. 애들 상태 볼만합니다. 얼굴에 징이 몇 개나 박혀 있는지. 로마는 그래도 영어가 통하는 편이었는데, 이곳 나폴리는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여자애들 불친절해요. 남자들보다도 못 생긴 것들이. 갑자기 비가 좍좍 쏟아지는데. 이래가지고 내일 갈 수나 있을까 싶고, 민박도 그저그렇고, 그냥 내일 바로 피렌체로 가버릴까. 생각이 듭니다. 쫄딱 맞고 들어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까 싶었는데, 물이 너무 뜨겁거나 차갑거나 두 가지 버전입니다. 이젠 욕나온다. 썅.
여행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