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창동
배우: 전도연, 송강호 외 연극배우 출신 조연들
밀양은 죽은 남편의 고향이었고, 예전부터 밀양에서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기에, 이참에 아예 살려고 내려왔다는 신애의 말은 밀양주민들에게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그들의 눈에 비친 신애는 그저 남편없는 과부일뿐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무슨 회장이니, 위원회장이니 하는 직함이 왜 중요하냐며, 속물들이라 비웃으면서도 주변 땅을 보러 다니고, 이런 사실을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신애의 심정은 여자 혼자 사는 것에 대한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한 것에 기인한다.
이 영화는 용서에 관한 간극에 대해 다루고 있다. 기독교적인 시선에서 바라 본 용서는 주님이 주체자다. 소리내어 통곡할 수 있는 공간과 정신적 위안을 준 종교라 할지라도 슬픔으로 가슴 한 켠이 썩어가는 신애에게 용서는 그리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때문에 구치소에 면회를 갔을 때 이미 주님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평화롭게 말하는 유괴범의 말을 듣는 순간, 신애는 절대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음을 깨닫게 된다.
무심했던 아버지, 남편의 외도와 죽음에 이어진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겪어야 했던 신애에게는 그 어떤 선택도 주어진 적이 없었다. 이 때 신애에게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린 종교는 꾹꾹 참고 있던 그녀의 울분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고 만다. 자신을 위해 기도회를 여는 집사네 베란다에 돌을 던지고, 집사 남편을 유혹해서 갈대밭에서 뒹굴고, 부흥회가 열리고 있는 행사장에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고,사과를 깎던 과도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신애의 행동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절대자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신애가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용실에 들어갔을 때 만난 유괴범의 딸은 학교를 중퇴하고 소년원에서 배운 미용기술로 그녀의 머리를 매만진다. 그녀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볼 때마다 자신의 아들을 유괴한 그녀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고, 다시 그녀에게 분노가 생기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신애는 아직도 자신이 아직도 용서를 하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 마당한켠에 거울을 세워두고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신애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하지만, 잘린 그녀의 머리가 밀양의 햇살 속에서 뭉쳤다가 흩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결코 슬프지 않다.
영화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