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이크를 타고 좀 더 멀리 가보기로 했다. T를 뒤에 태우고 동네 한바퀴를 돌아 속도감을 익혔다. 아무래도 혼자 탈 때보다 힘이 두배로 들어가니 어깨와 팔목이 저릿저릿하다. 어찌나 겁이 많은지, 바짝 붙어 앉아 있는 탓에 정지했다가 출발할 때마다 헬멧이 부딪히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더 더워 미칠 지경이다. 매연과 땀까지 뒤범벅되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꾸따와 누사두아 방향으로 갈라지는 큰 오거리까지 60킬로 속도로 달리는 동안 맹렬한 속도로 지나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정신을 곤두세웠다. 로터리 바로 옆에 DFS면세점이 있다하니 거기까지만 가보고 오기로 했다.
오거리 근처에 다다르자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길바닥이 안보일 정도다. 혼자 탔다면 이리저리 피해보겠는데, 핸들을 잡고 있는 것 만으로도 벅차니, 차선 하나 바꿀때마다 용을 써야 할 판이다. 뒤에서는 빨리 안간다고 빵빵대지, 자동차는 몇 미리 차이로 옆을 휙휙 지나가지, 내가 여기를 왜 왔을까. 후회는 이미 늦은 상태이고, 무조건 가는 수밖에 없는데 저만치 면세점 간판이 보인다.
바이크 주차를 하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관리인들은 모두 저쪽, 이쪽 방향만 제시할 뿐 바이크 주차장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 그늘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수백대는 됨직한 바이크들이 일렬로 한치의 틈도없이 주차 되어있었는데, 아마도 직원전용 공간인듯 했지만, 별 말 없길래 그냥 빈곳에 주차했다. 옆에 있던 직원에게 헬맷을 여기에 둬도 안전하냐고 물으니, 상관없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핸들에 헬맷을 걸쳐놨다. 한국에서는 낼름 집어갈텐데, 이곳은 워낙 바이크가 일상화되어 있어서 그다지 손타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오랜만에 접해보는 선진국 서비스의 대표주자, 면세점에 들어서니 천장도 높고, 공간도 넓고, 조명도 환하고. 에어컨도 시원하고. 아..너무 좋다. 발리는 전력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가로등도 어둡거나 꺼져있는 경우가 많고, 일반 상점이나 가정집의 경우에도 어둡게 생활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곳은 별천지인가싶다. 샤넬, 구찌 등 먼나라 매장들을 지나 발리 특산품만 파는 별도매장으로 들어갔다.
주로 대나무로 만든 수제가방과 아로마오일, 바틱제품, 발리커피 등이 있는데, 특히나 가방제품은 품질이나 디자인면에서 뛰어나고 가격대도 면세점치고는 합리적이다. 하지만, 맘에 드는 가방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망설이는 이유는 한국은 지금 겨울인데, 내년 여름을 위해 사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몇 바퀴를 계속 돌며 또 다시 망설이다 눈 질끈 감고 매장을 뛰쳐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했다.)
기왕 온김에 옆건물의 마타하리 쇼핑몰까지 둘러보기로 했다. 꾸따에 위치한 마타하리보다는 훨씬 더 규모가 있어 보였지만, 마침 점심때라 식당몰부터 가기로 했다. 수끼, KFC, 일식, 베스킨라빈스 등이 있는데, 패스트푸드는 싫고, 수끼는 더울 것 같고, 간단하게 초밥을 먹기로 결정,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모밀국수와 초밥정식을 시켰는데, 국물에 무 갈은 것을 넣어 주지 않는 것은 발리의 식습관인건가. 게다가 너무 짜.다. 왠만하면 그냥 먹겠는데, 이건 입에 넣으면 뱉고 싶어질 정도로 짜다. 결국, 국물을 좀 더 넣어달라고 했지만, 그 짠 국물을 더 부어온 것일뿐 여전히 짜다. 이러다 장아찌 될 것만 같다.
이제 문제는 숙소까지 가는 길이다. 도로는 점점 더 엉망이 되어 있고, 어떻게든 U턴을 해서 돌아가야 한다. 일단, 큰 도로로 들어서서 몇 킬로를 직진했지만, 당연히 표지판은 보이지 않고, 하염없이 남쪽으로 향하는데, 저만치 경찰관이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U턴을 하려는 다른 차의 꽁무니에 붙어 살살 앞으로 나가 간신히 U턴을 했지만, 반대쪽 차선은 더 엉망이다. 악몽이 따로 없다. 자꾸만 뒤에서 빵빵거리길래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무시했는데, 바이크의 우회전 깜빡이가 계속 켜져있었다. 이런 채로 계속 좌측, 우측으로 왔다갔다하니 너 지금 장난하냐.식의 표현이었다.
잠시 후 오거리를 알려주는 동상이 보이고, 사누르 방향으로 우회전 한뒤 죽어라 달리다보니, 아파트골목으로 들어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또 다시 죽을 힘을 다해 U턴 위치로 들어선 뒤 천신만고 끝에 아파트로 들어섰다. 시동을 끄고 세우는데, 순간 힘이 풀리면서 하마트면 바이크와 함께 쓰러질 뻔했다. 다시는 뒤에 누군가를 태우고 나가지 않으리라. 뒤에 탔던 T도 공포의 시간이었다며, 그냥 자전거타고 동네만 다니겠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네.이사람아.
오후5시
같은 고향출신인 그들은 21살 때 결혼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결혼적령기는 남자는 20세, 여자는 15세라고 한다. 결혼하려면 돈이 많이 들지 않느냐 물으니 그렇지는 않댄다. 결혼 후 임신이 되지 않아 임신촉진제를 맞아서 작년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은 이오, 1살이다. 보고 싶다고 하니, 와이프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오라고 한다. 잠시 후 장인어른과 린다(와이프 이름),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긴 이오가 도착했다. 낮가림이 있어 내가 다가서자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너무 귀엽다. 아이를 꼬시려고, 아이패드의 음악도 들려주고 비디오도 틀어줬지만, 낯선 사람앞에서 절대 경계를 풀지 않는다. 에코는 아들을 보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싹싹하고 잘웃는 린다는 꽤 미인이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인상이 좋아보이는 장인어른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에코는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