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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발견

발리에서 잠깐 살아보기 - 11일째

by iamlitmus 2010. 11. 18.

오늘은 남쪽지역 탐방이다. 호텔 주변의 레스토랑과 기념품가게, 편의점등이 들어서 있다. 길 끝에서 왼쪽으로 꺽어들면 맛사지샵 몇 개가 줄지어 있다. 어제 무리한 탓에 뻐근한 어깨를 풀어줄 겸, 가격도 5만루피 정도면 저렴하다 싶어 그 중 한곳에 들어갔다. 침대가 3개 정도 놓인 규모의 소박한 시설이다, 프랑스인 부부가 발맛사지를 받고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보면, 발리사람들은 영어, 일본어, 불어, 중국어 등 기본적인 회화정도는 가능한 것 같다.

발리 맛사지에 이런저런 선입관을 갖고 있던 내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 믿을 수 없을 만큼 센 손끝 힘과 야무지게 꾹꾹 누르고 쓸어 내리고다리, , 어깨 순으로 마치 내 몸에 들어 앉은 듯 포인트를 꼭 집어 맛사지하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뻔했다. 대신, 약간의 팁과 함께 매일매일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남쪽 뒷골목은 또 다른 고요함을 보여준다. 고급리조트 단지처럼 깨끗하고, 나무들이 울창해서 햇볕을 가려주는 그늘이 대부분이다. 한참 걷고 있는데옥수수 광주리를 얹은 할머니가 다가온다. 얼마냐고 물으니 2개에 1300. 한 개 더 달라고 하니 안된다고 한다. 5개 사면 깎아주겠다고 하는데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뭐라 한다.
/배고프다고? 그러더니,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대고 이마를 찡그린다.
/머리가 아프다고? 가슴을 쿵쿵 친다. 가슴이 아프다고?
영어를 전혀 못하는지라 둘이 쪼그리고 앉아 손짓발짓을 하고 있는데, 외국인이 지나가면 금새 표정이 바뀌며 옥수수를 뒤적거린다.
행인이 지나가면 다시 같은 행동을 한다.
배아프고, 머리아프고, 가슴아프고. 그리고 돈을 보여준다.
/아..몸이 안좋으니까 돈을 달라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현지인이 차옆에 서 있었는데, 그 쪽을 흘깃거리며 계속 반복한다.
봉지에 든 옥수수를 가리키며,
/
그래서 내가 옥수수 샀잖아요다시 옥수수를 더 담으려고 한다.
/먹을 사람이 없어요. 저 조금밖에 안먹거든요. 이젠 서로 자기네 나라 말을 하기 시작한다.
차피 영어를 해도 못알아들으니
, 서로 판토마임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진 찍어도 되요? 그럼 돈을 달란다. 다시 옥수수 봉지를 들어보이니 고개를 흔든다.
하나,,.하니, 손을 내민다. 스마일.하니 활짝 웃는다.
찍고 나서 다시 또 손을 내밀길래 나도 이에 지지않고 옥수수봉지를 내민다. 할머니도 나도 서로 집요하다.

 빌라를 렌트한다는 간판이 눈에 많이 띈다. 시내에서 본 수영장 딸린 풀빌라와는 완전 다른 모양새지만 조용하고 기동력만 있으면 충분히 살만해 보인다.

호텔을 짓는데 투자를 하면, 이익금의 60%를 주겠다는 간판이 있다. 방이 25개인데, 다 찼을 경우 하루, 일주일, 일년이면 얼마를 벌 수 있고, 비수기, 성수기때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도 씌여있다. 어떻게 홍보하고, 그외 세금, 인건비, 운영비용이 있을텐데..음음..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것도 병이다.

 

다시 잘란잘란(산책이라는 뜻). 저절로 아..너무 예쁘다.라는 탄성이 나올 만큼 멋진 풍경이 차츰 드러난다. 사누르에 처음 도착해서 본 어촌 같은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누사두아비치에 버금가는 멋진 해변이 보인다.

모래사장에서 조그만 양동이로 번갈아 걸러대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니 조그만 갯지렁이가 가득 차 있다. 바닷가에서 퍼온 모래속에 섞여있는 갯지렁이들을 모래와 분리하고 있다. 남자의 고향은 롬복이라고 했는데, 이건 고기를 잡기 위한 미끼로 쓸 재료이며, 내일 바다로 나간다고 한다. 어떤 고기들을 잡아올까. 내일 다시 오면 잡아온 고기들을 볼 수 있을까.

해변가 바로 옆에 옥수수를 굽고 있는 노점상이 보인다. 1개에 5천원. 할머니가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씌운 것은 아닌 듯하다. 이미 샀다고 하니, 어디서 샀냐고 묻는다. 또 다시 판토마임 모드로 들어간다. 머리에 광주리를 얹은 사람한테 저쪽에서 샀다 하니,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하더니 활짝 웃어준다.

길을 걷다 먼저 인사를 하면
, 발리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순식간에 활짝 웃음으로 바뀐다. 주위가 환해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에 용기를 얻어 만나는 사람한테 모두 인사를 한다. 아는 인도네시아 인사를 총동원하면 너 인도네시아어 할줄아네 ? 하며 대화가 이어진다. 가장 자신있는 문장인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십중십십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한다.

해변가 카페에서 레몬쥬스를 마셨다. 안쪽에는 맛사지 침대가 놓여있다. 해변가 근방 카페는 이렇게 차와 음식을 팔고,맛사지도 해준다. 아들처럼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 발리가 좋아졌냐고 묻는다. 누사두아,꾸타,우붓 모두 가봤지만, 이곳이 제일 좋다고 하니, 굉장히 기뻐한다. 방금 갓 갈아낸 레몬쥬스 가격은 1300. 나는 그동안 얼마나 비싼 쥬스와 맥주들을 마셔왔던 것인가.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발리 물가다.


산책로 끝에서 만난 잭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전형적인 날건달 스타일인데, 자신도 이곳에 휴가를 보내기 위해 왔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개뻥쟁이같다. 태국 파타야에서 왔다고 하면서, 이름은 발리식 이름인 '마데'인지 의혹이 생겼다. 이 때부터 잭의 꼬시기 작전이 시작됐다.
/너 서핑 좋아해? 아니.
/스킨스쿠버? 아니.
/살사댄스? 아니.
/오토바이 태워줄까? 나도 있어.
/너 휴대폰 번호 줄래? 나 없어.
/내 휴대폰 번호 주면 연락할래? 나 걸줄 몰라.
/너 어디에서 묵고 있어? 이크..찾아올지도 몰라. ..그건 알려주기 그렇고. 나 지금 가봐야해.
/너 나한테 관심있어? 아니.
/너 정말 예쁘다. 그래.
/그럼 같이 사진 찍을까? 누군지도 모르는 휴대폰에 내 얼굴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거 말고, 대신 내가 너 사진 찍어줄께. 찰칵.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잭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다시 찍을래. 하면서 갑자기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친다.
/나
맘에 들어? 나 진짜 너 맘에 드는데.
쌩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수밖에.

오늘 저녁은 집에서 가져온 불고기양념과 참치, 달걀을 섞은 밥이다. 여전히 냄비밥을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항상 된 밥이 된다. 그래도 나름 괜찮은 맛이 난다. 바이크를 빌리고, 장을 봐서 생활하다보니, 그 외 돈 쓸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