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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발견

발리에서 잠깐 살아보기 - 9일째

by iamlitmus 2010. 11. 17.


옆집 아기가 또 운다. 3-4살 정도 되보이는 여자아이를 처음 복도에서 만났을 때 너 정말 귀엽구나.했었지만, 너무 자주 우는 것이 문제다. 
오늘도 눈부신 날씨다. 더위가 가실 즈음 즈음 스쿠터를 시운전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오전이 지나도록 인터넷을 연결해주기로 온 기사도, 따로 연락을 주기로 한 다람쥐 처녀에게서도 연락이 없다.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 만만치않은 로빙서비스 비용이 떠올라 문자를 보냈다. 

그나저나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대야가 필요한데. 사기로 된 빈 화분을 이용하자니 깨뜨릴까봐 겁나고, 무거워서 옮기기가 힘들다. T가 욕실청소 팁을 알려주는데, 변기 옆에 있는 호스를 이용하란다. 동남아지역에서는 볼일을 본 후 휴지대신 미니샤워기로 마무리를 하는데, 이곳에도 그것이 있다. 단, 수압이 쎄서 비데의 사용감을 상상한다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T가 나간다길래, 근처 슈퍼에서 대야를 사오라고 시켰다. 영어공포증이 있는 T지만, 물건 집어들고, 계산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열쇠가 하나인 까닭에 따로 외출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불편하다

아침은 현지쌀로 밥을 해서 3분카레로 결정했다잠시 불린 후에 센불-중간불-약한 불 순서로 가열했다. 바닥에 살짝 눌기는 했지만, 카레밥에 맞는 적절한 고슬밥이 완성됐다. 찰진 기운이 없고, 입안에서 따로 돌아다니는 느낌이 익숙치않다.
그래도, 남은 일정동안 최소 하루에 한번은 밥을 해먹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몇가지 밑반찬이 있으니 그리 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매일 외식을 하기에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춘 전형적인 서양식이어서 입에 맞지 않는다. 아파트
근처에 로컬식당이 몇 개 있지만, 여전히 입에 맞는 음식을 고르기 힘들다. 뿌리속까지 깊게 박힌 한국인의 식성을 벗어던지기는 어려운 것인가.

빨래를 할 때마다 말리는 것이 고민된다. 덥고 습한 날씨가 반복되는데다 한바탕 비라도 내리기라도 하면 다시 그 날부터 3일동안 널어놔야 한다.
다행히 한국생활에 대한 그리움은 생기지 않는다. 이곳의 조용하고 한적한 환경은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 최적화 되어 있다. 방콕이나 그 외 다른 여행지에서 느꼈었던, 무엇이든지 보고, 먹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외국인은 다 똑같아 보인다고 하지만, 며칠동안 느낀 바로는 마음을 여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언어가 통하고 통하지 않고의 수준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기본적인 아우라가 다르다

오후가 다 지나가는데, 인터넷 연결기사는 여전히 연락이 없다. 인터넷이 안된다고 해서 그리 불편한 점은 없지만, 딱 떨어지지 않는 일처리가 마음에 안든다한국의 빨리빨리 방식에 익숙한 이들은 동남아 사람들의 느긋한 태도를 답답하다, 느리다, 게으르다고 느낄 수 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늦어진다거나 뭔가 제대로 진행이 안된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발리인들의 특성 중 하나가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나 비난을 들을 경우, 결코 맞서 화를 내거나 싸우지는 않지만, 계속 마음에 담아둔다고 한다. 특히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창피를 줬을 경우, 상처를 더 받는다고 하는데,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한국인들의 불 같은 기질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드디어, 바이크 첫 시동의 순간. 우선, 숙소근처의 뒷길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간단히 지도를 숙지하고 달리다가, 이상하다 싶으면 멈춰서서 지도를 확인하는 식으로 동네를 돌았다. 이런 식으로 두 바퀴를 도니, 대충 지형이 감이 잡힌다. 서울에서 스쿠터를 몰아본 경험이 꽤 큰 도움이 된다. 30센티 간격으로 자동차가 옆을 스쳐 지나갈 때는 여전히 움찔거리지만, 이런 패턴으로 달린다면, 꾸따나 르기안 쪽도 문제없이 갈 수 있을 듯하다오랜만에 달려보니 재미있기는 하지만, 햇볕이 너무 따갑다. 다음부터는 긴팔 옷을 입어야겠다.

 

숙소로 돌아오니 에꼬가 있다. 저번 사고로 스쿠터가 망가져서 오늘은 다른 바이크를 가지고 왔다는데, 세상에나. 베스파 모델이다. 이상한 점은 4천 킬로밖에 안 달렸는데, 차체 자체는 완전 고물딱지다. 베스파 동호회 회원이라는데, 삼촌은 옆구리에 한명을 더 태울 수 있는 카누모양의 베스파를 갖고 있다고 한다 3대의 바이크를 갖고 있다 하길래, 너 정말 부자구나. 하니 응. 한다. 야간경비를 하기에 생활이 어려운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건가.

에꼬외에 다른 중년여성도 출근했는데, 청소 등을 도와주는 것 같다. 이것저것 물으니, 영어를 못한다고 미안해한다. 무슨 소리야. 나도 인도네시아어 못하는데. 같은 거야. 하니 순박한 웃음을 짓는다.

 

바이크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맥도날드가 있는데, 바이크 손님이 많은 까닭에 바이크에서 내리지 않고서도 주문할 수 있다. 가격대는 한국과 비슷해서 현지물가에 비추어보면 결코 저렴하지 않다. 셋트가격이 4-5천원대이니 일반 레스토랑에서 사먹는 음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발리의 기름가격은 1리터에 600원 정도의 환상적인 가격. 한국에서는 50cc를 채우려면 5천원정도인데, 이곳에서는 110cc 기준 2천원 정도면 풀이다 

에코가 말하는 꾸따는 발리에서 최악의 스팟이다. 도로는 좁고, 주차공간은 적고, 양쪽으로 오고가는 차와 바이크, 관광객들까지 곱해져 끔찍한 정체지역이라고 한다. 주말 저녁, 삼청동 양쪽 차선에 잔뜩 불법주차한 자동차들과 오토바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 상황을 상상하면 된다.


이곳에 있는 동안 열대과일은 여한없이 먹기로 했다.
커다란
멜론 한통에 1000원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가격도 그렇지만, 망고나 망고스틴은 한국에서는 얼마나 귀한 과일이던가.  

장을 봐서 끼니를 해결하다보니, 일반 레스토랑에서 사먹는 음식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확실해진다. 게다가 모든 가격에는 15%의 세금이 붙기 때문에 생활물가를 알지 못하는 관광객일 경우에는 펑펑 돈을 쓰고 갈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택시비는 기본료가 700원정도지만, 어림잡아 30초마다 금액이 올라가니 한국 택시비용과 그리 다르지가 않은 것 같다.

 

오늘 저녁은 쌀 볶음밥. 밥에 넣고 볶으면 식당에서 먹는 짬뿌르(볶다)가 된다. 포장을 뜯었을 때부터 향신료 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불 위에 올려놓고 가열하니 온집안에 냄새가 퍼져나간다. 입에 맞지 않을까 싶어 후추와 깨를 뿌린 후, 첫 수저를 입에 넣는 순간. ..아직 현지적응이 필요하구나.라는 깨달음이 다가왔다.
평소보다 밥도 많이 했는데 이렇듯 난감할 때가 있나. 그래도 무조건 다 먹기로 하고, 김과 깻잎, 김치와 함께 먹으니 나름 괜찮았지만, 현지식을 시도해봤다는데에 의의만 두기로 하고, 다시는 사먹지 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