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의 발견

비밀요원 리트머스

by iamlitmus 2007. 3. 26.
주차장에 내려가는 중이었다. 뒤에서 차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속도를 줄여야 하는 부분인데도 전속력의 엔진소리인거다. 순간, 검정색 SM5가 쏜살같이 지나갔고 끼익소리를 내며 커브를 돌아 지하2층으로 굴러떨어지듯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미쳤나 싶어 한참을 주시하고 있자니, 뒤이어 경찰차가 득달같이 쫒아왔다.

오옷..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추격전! SM5는 독안에 든 쥐였고 민중의 지팡이가 용의자를 잡는건 시간문제. 난 그 현장의 목격자가 될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거였다.
그런데, 경찰 아저씨는 지하로 내려갈 생각은 안하고 올라오는 차 운전사에게 탐문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 지하 몇 층까지 있죠?

어구. 저러다가 놓치겠다 싶어 내가 먼저 지하 2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용의자는 이미 주차를 하고 어딘가 숨어버렸는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한 남자가 황급히 뛰어 계단출구로 모습을 감추는 것이 보였다. 앗, 저 사람이다 싶어 뒤를 쫒으니 아까 그 SM5가 눈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엔진부분을 만져보니, 아직도 뜨근뜨근하다. 옳지. 이 차가 분명하다. 얼마나 급했는지 트렁크도 열려있군. 뒷북치듯 경찰차가 내려와 천천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난 이차가 바로 그 차라고, 범인은 벌써 계단으로 올라갔다고 말해주려 했으나 경찰차는 이미 모습을 감춰버린 뒤였다.
일단, 차번호를 외운 뒤 지상주차장으로 올라오니, 몇몇 경찰아저씨들이 서성대는 것이 보였다. 아하..벌써 도주로를 차단했나보군. 무전기로 누군가와 통신하고 있는 경찰아저씨에게 신호를 보냈다. 혹시 제보하는 것을 들켜서 앙갚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힐끔거리며 눈치를 주니, 전혀 알아차리지를 못한다.

/저기요..저기..
/네?
/SM5...SM5..
/네?
/8831..검정색 SM5..8831..
/뭐요?
/아저씨가 찾는 차요. SM5..88..3.1..
무슨 뜬금없냐는 표정이다. 아니, 용감한 시민이 제보를 해주는데 저렇듯 무심한 경찰이 있나.
/아까..아저씨가 추격한..차요..
말하는 내가 점점 무안해졌다. 뒤돌아 뚜벅뚜벅 걸어 내려오는데 뒷통수가 따갑다.

아..아무래도 드라마를 끊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