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의 발견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

by iamlitmus 2024. 9. 23.

현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정신적 문제는 우울이나 불안이 아니다. 
지루함과 공허함이다. 

 

지루함이란 만족스러운 활동에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할 수 없는 혐오 상태를 뜻한다. 지루함은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며, 자신의 목표를 재조정하고 보완해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정이다.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원인 지루함은 최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 학습이란 기본적으로 새로움, 놀람,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이러한 학습을 회피하고 환경적 복잡성을 피함으로써 예측 오류를 줄이려는 소박한 시도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지루함이다. 

 

긴장이나 불만족 없이 자신의 주변 환경에서 이탈해 거리를 두고 있다면, 그건 지루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나 냉담에 더 가깝다. 지루함은 우리가 더 매력적인 일을 찾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즐거움을 경험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지루한 사람은 즐거운 일이나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하다. 지루함은 세상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망이며 그 대상을 명확하게 찾지 못함에 대한 불만이다. 주의력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지루함을 더 자주, 더 강하게 느끼거나 더 불쾌하게 느낄 수 있다. 

 

지루함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양가감정(서로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 자기 삶에 대한 수동-회피적 자세, 수동적 희망, 수치심, 정체성 혼란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들 중 일부는 자기 삶이 잘 풀리지 않은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고 세상을 탓했다. 하지만, 지루함의 해결책 또한 다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변화를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세상이나 타인이 뭔가 해주기를, 바깥에서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한편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고 자신을 탓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정체성의 위기이기도 하다. 만성적으로 지루함을 겪는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멀어지고 미래로부터 소외된 상태이다. 

 

지루함에는 갈망과 무력감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있다. 무력감은 갈망을 억압시켜 덜 불안하게 만든다. 갈망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귀찮아' '무슨 소용이야'와 같은 무력감으로 이를 덮어버리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낮아진다. 자신이 원하는 대상이나 야망의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인정하는 것은 그에 대한 책임도 감당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짊어지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무력감을 일으켜 애초의 갈망을 덮어버린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기 어렵게 된다. 지루함은 무엇을 해도, 무엇을 얻어도 결코 만족할 수 없게 만든다. 

 

지루함에 대한 해결책은 '서서 응시하는 능력'의 회복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경험하고 탐구하는 능력은 억압된 것을 해체하는 길로 이끈다. 자신의 욕망이나 충동, 원하는 바를 인정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 때 그것을 좆을 것인지, 말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다. 

 

만성적으로 지루해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자극을 갈망한다. 초조함으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지만 공허감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뭔가를 지속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호소하는 외로움과 고립감은 이러한 소외에서 시작된다. 모든 소외는 자기와의 관계에서 시작되며 자기 자신과 온전히 연결되지 못하는 경험, 자신의 핵심적인 부분으로부터 단절된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자기로부터 소외된 사람은 타인과도 연결될 수 없다. 안절부절 못하는 불만족과 무한한 갈망은 만성 지루함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대도시의 잦은 변화, 너무 많은 자극들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무신경, 무감각해지고 있다. 지속적인 외부 자극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은 주위에 기울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지루함을 받아들이고 쉬어야 한다. 우리는 성공적으로 자신을 방어한 후에야 계속해서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 빨리 답을 도출하고 의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채로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을 네거티브 능력이라 한다. 이는 '안 하는 것, 안 할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렇게 비워내는 네거티브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조건이자 에고를 무화시키는 능력이다. 우리는 늘 자신의 기능을 최대로 발휘해 문제를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유능함과 쓸모, 능력과 매력에 집착해 과도하게 노력하는 것은 무시와 소외, 배제에 대한 공포에서 나온다. 이러한 공포는 사람들이 기능을 최대로 높여 어떻게든 더 얻고 더 올라가려는 상승 모드로 살아가게 한다. 진짜 연결은 기능을 해제하고 몇 계단 내려가는 존재의 하강 상태에서 일어난다. 자신의 존재감에 집착하지 않고 에고를 내려놓는 것이다.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을 때 순수한 연결의 순간에 비로소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한다. 

 

오늘날의 지루함은 단조로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감각적 자극들, 늘 업데이트되는 이야기와 뉴스들,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며,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낀다. 자극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미가 없어서다. 신호들만 넘쳐나고 진정한 정보는 희귀하다. 인간이 활기를 잃지 않으면서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은 카오스를 다루는 역량에 있다. 자기만의 고유성, 창의성, 주관성은 각자의 카오스를 이해하면서 타자의 카오스와 만날 때 만들어진다. 관계를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은 취약해질 가능성, 상처 받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기존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 성장할 가능성 또한 생겨난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들으려면 자신의 기억과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