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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인생역정 리트머스 극장

by iamlitmus 2007. 3. 26.
내일부터 열리는 장터에 내다팔 물건을 챙기고 있던 진영, 해산한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쉴새없이 식은땀이 흐른다.

이때, 충걸..  슬그머니 들어와 한구석에 냉큼 드러눕는다. 진영 눈치를 살피고 있던 충걸..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진영..몸은 좀 어때? 많이 나아졌어?
/괜찮아요. 근데, 어젠 어디서 주무셨어요?  
/으..응..나성에서 온 젬스하고, 아는 분하고..이야기 좀 나누다가..어쨌든..그랬어  
/근데..진영..나 고민이 하나 있어. 나..내일까지 백삼십환이 필요한데..  
/왜요? 어디에 쓴 돈인데요?  
/으..응..그건 알 필요없구..하옇튼..나 내일까지 필요해..있지..그..시계 팔면 안될까?  
/그거요?..그게..당장 팔린다는 보장두 없구요..값도 제대로 쳐주지 않을거예요.  
또..그걸 팔려면 강건너 나루까지 가야 하는데, 제가 아직 몸이 안좋아서..  
/알았어..알았어. 진영 몸도 안 좋은데 그러믄 안되지..근데..내일까지는 꼭 되어야 하는데..  
/(한숨)제가..어떻게든 해볼께요..걱정마세요. 그런데, 안색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응..나 너무 피곤해..이래저래 후달리는 일들이 많았거든..진영..나 좀 쉬어야 겠어. 이따 다시 이야기해.  
  
아무말없이 충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진영..입술을 질끈 깨물어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을 삼킨다.  
10을 벌면 15가 나가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힘겨웠다. 이젠 더이상 내다 팔것도 없었다.  
항상 주위에 사람이 들끓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이들이 많지만, 사람이 좋기만 하고 귀가 얇은 탓에 매일 다른이에게 속고 당하는 것이 다반사인 남편을 원망 해 본적이 없다면 거짓말일것이다.

뒷뜰 한켠에서 몸조리하는데 보태라며 친정어머니가 쥐어주신 금가락지를 만지작거리던 진영의 눈에서는 어느새 뚝뚝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나, 이내 때묻은 옷소매로 야윈 얼굴을 쓱쓱 문질러 닦는 진영의 얼굴엔 결연한 기색이 완연했다.
동구밖 금붙이 황영감에게 황급히 달려가는 진영의 치맛자락을 붙잡는 건 저무는 산자락 그늘뿐만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