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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발견

종이로 만든 사람들[살바도르 플라센시아]

by iamlitmus 2007.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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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읽어보니 뭔 이야기인지 알겠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난 살바도르 플라센시아는 8살때 로스엔젤레스에서 12마일 떨어진 엘몬테라는 작은 마을로 이민을 오게 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엘몬테는 꽃을 꺾으며 생활하는 갱단 EMF과 머릿속 생각까지 읽어내는 토성에 맞서 싸우는 여러 인물들이 존재한다. 책 속의 글자방향이 세로로 되어 있거나, 구멍이 뚫려 있고, 심지어는 검은 상자로 덮혀 있어 글씨를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절대 파본이 아닌 저자의 의도라는 설명하에 이 책은 시작된다.

종이로 인간을 만들어내는 오리가미 외과의 안토니오에서부터 하늘에 떠 있는 토성이 아내를 떠나게 만들었다고 믿는 페데리코 데 라페, 우주의 비밀을 품고 있는 아기 노스트라다무스, 상추잎을 따는 노동자와 잠자리를 했었던 리타 헤이워스, 성인이면서도 레스링선수로서 죽음을 맞이한 산토스, 모든 것이 재로 변하는 마을에서 온 줄리에타 등 수많은 인물들이 차례로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는 스토리의 중심에는 토성이라 불리우는 작가 살바도르 플라센시아가 있다.

작가는 토성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작품의 일부를 차지하며,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등장인물들과 무형의 전쟁을 치룬다. '슬픔의 상업화'라는 소재로 전락하고 싶지 않은 등장인물들은 토성이 그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도록 납으로 된 기계거북껍질속에 숨거나, 물, 공기, 꽃 등 엉뚱한 생각만 하는 등 승산없는 전투를 치뤄낸다. 이들과 씨름하느라 여자친구마저 떠나보낸 토성이 실연의 아픔에 정신을 못 차렸을 때는 등장인물들의 승리가 확실한 듯 보였지만, 결국 작가의 승리로서 마무리가 된다.

명확한 스토리 중심이 아닌 이 소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자신들을 창조하고, 생각마저 뻿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관계들과 독특한 가치관들이다. 처연하기까지한 사랑에 대한 찬사와 헌신은 결코 구차하지 않으며, 피튀기는 폭력과 배신은 잔인하지만 비열하지 않다. 장면과 장면사이의 충분한 여백은 그러한 느낌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활용된다. 남미 출신 작가들의 공통점은 정해진 플롯에 구애받지 않는 풍부한 상상력과 감수성 그리고 유쾌한 엉뚱함을 들 수 있는데, 이 책 또한 그러한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