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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발견

병든아이 - 줄리 그레고리

by iamlitmus 2007.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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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은 보호자가 피보호자의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유발하거나 왜곡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때 대부분의 가해자는 어머니이고, 그 피해자는 그 자녀이다. 18세기 모험가이자 군인이었던 뮌하우젠 남작은 허황된 모험 이야기를 쓴 책으로 악명이 높았다. 1951년, 영국인 정신과 의사가 이 남작의 이름을 빌려,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의 질병을 꾸며내는 정신 질환'을 '뮌하우젠 증후군'이라 이름 붙였다. 같은 목적으로 자신이 아닌 '대리인'을 이용하는 증상을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증후군(MBP)'이라고 한다.

1.5kg의 미숙아로 태어난 줄리는 일찍이 코와 기관지에 발병을 했고, 성가시고 끈질긴 편두통에 시달렸다. 부은 편도선, 비정상적인 격막, 불분명한 알레르기도 문제였다. 심장 내과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엄마는 의사의 뒤를 쫒아가서, 그의 무능력함에 대해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엄마는 언제나 줄리에게 말했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다. 그러니 제발 네가 얼마나 아픈지 저놈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리'라는 이름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오빠가 있었고, 중학교 학력이 전부인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제대로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엄마가 17살 되던 해, 할머니는 50살 먹은 카우보이에게 엄마를 주었고, 그가 죽었을 때 엄마 나이는 26세였다. 그리고, 얼마 뒤 베트남전에서 고엽제를 잔뜩 들이마신 채로 돌아온, 정신나간 아빠와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줄리는 19살이 될 때까지 엄마와 함께 수많은 병원을 순례했다. 불필요한 검사를 강요받고, 배부를만큼 약을 삼켜야했으며, 보이지않는 학대를 감수해야 했던 그녀는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망가지게 된다. 그녀의 부질없는 저항은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그녀의 뒤를 이어, 남동생 그리고 수많은 위탁아동들과 노인들 또한 엄마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

이제 서른살이 넘은 줄리는 비로소 모든 것이 엄마가 꾸민 짓이며, 자신의 인생이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에 의해 짓밟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불행한 가족사가 낳은 폭력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한 줄리는 자신만이 그것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일반적으로 쉽게 노출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학대받는 아동의 의견보다는 가해자인 부모의 주장이 훨씬 더 인정받는다는 것이 무서운 현실이다. 정신적으로 상처를 안고 있는 부모밑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그들이 성장할 때까지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상처는 엄청나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피해아동의 형제자매 중 25%가 학대로 인해 사망한 후, 둘째나 셋째, 넷째, 다섯째 아이이게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후에야 겨우 전문가들과 사법당국이 의심을 하게 된다고 한다.

가해자는 자신이 아이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주위의 관심이 줄어든다고 느끼면, 다른 병원이나 응급실로 옮기게 되고, 보다 완벽한 연기를 위해 인터넷에서 지식을 섭렵하거나, 전문의학서적을 탐독하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이 병명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수많은 피해아동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러져가고 있다.